1987년 1월 13일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이던 박종철은 하숙집에서 체포돼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거기서 선배 박종운의 행방을 대라는 취조를 받았으나 순순히 불지 않았다. 그 때문에 물고문, 전기 고문 등 각종 가혹행위가 가해졌고 결국 하루 만에 사망했다.
경찰은 고문으로 인한 사망 사실을 부인하고 화장으로 증거를 은폐하려 시도했으나 용기 있는 언론인과 의사, 그리고 검찰의 수사로 진상이 밝혀졌다. 강민창 치안 본부장은 이 사건을 두고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명언을 남긴 후 구속됐다.
그의 이 발언은 원래부터 별로 없었던 전두환 독재 정권의 도덕적 정통성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6월 민주 항쟁을 촉발시켜 1980년 광주 학살로 시작된 군부 독재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야말로 한국 민주화의 1등 공신인 셈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민주 항쟁을 거쳐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대북 유화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은 민주 인사가 간첩으로 몰리던 사회에서 간첩이 민주 인사로 추앙받는 사회로 바뀌었다. 그 와중에 종북 주사파가 ‘진보’의 탈을 쓰고 정치판을 누비고 다니고 역사의식이 희미한 젊은이들과 순진한 지식인들이 그들의 장단에 춤췄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러기가 좀 어려워졌다. 부정 선거로 당선된 이석기와 김재연, 그리고 이들을 감싸고 나선 김제남 등 통합 진보당 구 당권파 소속 국회의원들이 이들이 이야기하는 소위 ‘진보’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자칭 ‘진보’ 인사의 멘털리티가 어떤 것인지 국민들에게 숨김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진보당 내 자체 진상 보고서에서 ‘총체적 부정 선거’로 규정된 선거를 통해 비례 대표 후보로 뽑힌 이석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완벽하게 부정이 없는 선거가 어디 있느냐”며 “70%는 부정이 있어야 총체적 부정 선거라 할 수 있다”는 신선한 주장을 폈다. 강민창을 부끄럽게 하는 망언이다.
이런 논리라면 앞으로 모든 선거에서 부정행위를 낱낱이 밝혀낸 후 전체 표에서 공정한 표와 부정한 표의 비율을 계산해 일정 비율 이상이 넘어야만 부정 선거로 규정할 수 있게 된다. 이
방식에 따르면 이승만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 된 3.15 부정 선거도 부정 선거라 부를 수 없다. 전체 표에서 몇 %가 부정인지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정 선거로 확인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승만 물러가라’고 시위를 벌인 이들은 모두 폭도며 그러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개죽음한 것밖에 안 된다.
그는 여기서 더 나가 모든 국민들이 애국가로 알고 부르고 있는 노래가 사실은 국가가 아니며 6.25를 비롯, 1.21 공비 침투, 도끼 만행,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천암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침략과 테러를 저지른 북한보다 한국을 일제로부터 해방하고 공산 침략에서 지킨 미국이 더 문제라고 주장했다.
통합 진보당 일각에서도 이런 병든 사고방식에다 부정선거까지 저지른 자를 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두고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이석기와 그를 존경한다는 김재연을 제명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했으나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구당권파로 이들 제명에 협조할 것 같던 김제남이 마지막 순간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이는 “이석기에게 승리를 안겨준 것이 아니라 봉사하라는 강제 노역형에 처한 것”이라는 이석기 뺨을 열두 번도 더 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강제 노역형에 처해지고도 싱글벙글 웃는 사람은 아마 인류 역사상 이석기가 처음일 것이다.
통진당의 이번 사태는 소위 ‘진보’라는 간판을 내건 집단 내부에 종북 주사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스스로 ‘진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국민들에게 분명히 알려줬다. 이들이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 사라지기 전까지 한국 진보의 앞날은 없다.
<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