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었다. 6월21일 서울을 떠났다. 첫 기착지는 일본의 요코하마. 기차 편으로 부산으로 내려가 요코하마로 건너가 거기서 또 다시 배편으로 홍콩으로 갔다. 그리고 항공편으로 런던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18일간이나 걸렸던 것이다.
아직 대한민국이 채 탄생도 하기 전이었다. 한국의 올림픽 축구 대표 팀은 그러므로 기술적으로 말하면 무국적 팀이었던 셈이다. 그 한국 팀이 올림픽 첫 경기에서는 멕시코에 5대3으로 이겼다.
기쁨은 그러나 잠깐이었다. 스웨덴에 0 대 12로 패배.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대참패를 겪었다. 세계수준과의 격차란 걸 실감하면서.
임원이 15명, 선수가 52명. 모두 67명이 참가했었다. 1948년 런던올림픽 한국 선수단 규모다. 취재진을 파견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KBS 아나운서 한 명이 겨우 따라 붙었던 것이다. 독립국가로 처음 출전한 올림픽이었다. 그 올림픽에서 김성집이 역도에서 동메달을 따자 요샛말로 한국은 뒤집어졌었다. 하여튼 첫 올림픽에서 한국이 얻은 메달은 동메달 2개로, 종합순위 24위를 기록했었다.
당시 눈물겨운 에피소드의 하나는 선수단이 입을 올림픽 유니폼 옷감조차 변변히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름대로 올림픽 선수단 유니폼 컬러를 감색 상의와 흰색 바지로 정했었다. 그러나 67명의 옷감 조달이 힘들었다.
그래서 겨울 옷감에, 칙칙한 청색 상의의 유니폼을 해 입고 하계 런던 올림픽에 출전 했던 것이다.
그런 사연이 깃들었던 한국 올림픽 선수단 유니폼이 이제는 베스트 유니폼의 하나로 선정됐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하는 전 세계 204개 국가 중 한국을 선수단복 디자인이 가장 세련된 나라로 치켜세운 것이다.
한국이 최초로 참가한 1948년 런던 올림픽 선수단복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이 이번 2012년 한국 선수단 유니폼이다. 그 한국 선수단 유니폼에 대해 타임은 “세일러복 스타일의 옷이 아주 세련됐다. 재킷은 몸매를 드러내도록 디자인 됐고 빨간 색 스카프도 두드러진다”고 호평했다.
64년 전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니 어찌 보면 촌스럽고 초라해 보였다.
그 단복을 오리지널로 디자인한 유니폼이 어떻게 베스트로 선정됐을까.
한국의 전통과 영국의 감성을 담았다. 2012년 한국 올림픽 선수단 유니폼에 대한 촌평이다. 이 말이 뜻하는 건 이런 게 아닐까. ‘끊임없이 세계화의 노력을 펴온 결과 한국의 미적 감각은 어느 덧 세계 초일류의 수준에 이르렀다’-. 격세지감(隔世之感)도 이런 격세지감이 없다.
런던 올림픽에 한국은 374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그리고 금메달 10개와 함께 10위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목표는 이미 초과달성한 게 아닐까. 가장 세련된 유니폼을 입고 입장하는 한국 선수단. 그 모습은 몇 개 이상의 금메달 효과를 내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