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나도 안 힘들다 뭐”

2012-07-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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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한나 <남가주광염교회 사모>

건강하던 큰딸아이가 병으로 누운 지 두 달이 지나간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병명조차 몰라 퇴원해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데 움직이지 못하는 딸아이를 들쳐 업고, 휠체어에 태우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남편과 덩치 큰 동생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큰딸을 간호하면서 소중한 깨달음을 얻는다. 우선 그동안 모든 일에 자신만만했던 태도를 다시 점검 받는다.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까지는 좋았는데 그런 태도가 혹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 된 것은 아닐까? 매일 하나님이 힘을 허락하시기에 살 수 있었던 것을 새삼 실감하며 좀 더 겸손하고 부드럽게 맡겨진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강한 엄마를 닮아 다섯 동생 돌보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씩씩하게 달려온 큰딸아이가 내심 자랑스러웠었는데 이렇게 아픈 모습을 보니 딸아이에게 너무 책임을 지게 했던 것이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래도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시니 이젠 다시 똑같은 잘못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한다.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도 새로 마음에 새긴다. 지난 성탄절에도 뉴욕에서 공부하다 집으로 날아와 새벽 5시에 샌타모니카 비치로 서핑하러 다니던 건강한 딸이 이렇게 몇 달 만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일상적인 활동을 다 멈추게 된 것을 보면서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재확인한다.

바이러스 하나만 잘못 들어가거나 신경 하나만 잘못 되어도 일상적인 모든 것을 급정거해야 하는 게 연약한 우리네 인생인데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큰 소리 치며 살아 왔는지…. 모든 것이 감사할 조건임을 매순간 노래해도 부족할 텐데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살아 있음을 고마워하며 감사 찬송을 부르련다.

고통 중에 눈물을 삼키며 배운 것 또 하나는, 모순 많은 세상이지만 아직도 천사 같은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는 사실이다. 어려운 일을 만나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은 달려와 나를 안아주고 격려해 주어 내가 아주 엎드러지지는 않도록 돕는다. 이들 때문에 나도 남은 평생을 ‘사람 천사’로 살게 해 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일용할 힘과 위로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우는 이들과 함께 우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온몸으로 느낀다. 사람이 한 평생 늘어나는 것이 사랑의 빚이 될 수도, 원망과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어떤 것을 더해 가느냐는 자신에게 달렸다.

또 한 가지 감사는 내 힘으로 세상 사는 게 아니라는 자각에서 온다. 전능자가 나를 눈동자처럼 지키고 계심을 경험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힘들다, 죽겠다’는 소리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동시에 남들이 힘들어 할 때는 바로 달려가야 함을, 남의 고통을 멋대로 해석하고 정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함을. 그저 마음 다해 축복하고 손잡아 주고 기도해 주어야 함을 깨닫는다.

오늘도 하루 살 만큼의 힘을 더해 주실 주님을 묵상하며 하늘 향해 ‘굿모닝’ 하고 미소를 짓는다. 아직 고통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지만 눈물을 훔치고 씩씩하게 외쳐본다. “하나도 안 힘들다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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