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은교’에게서 배운 것

2012-07-02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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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해 본다. 나이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늙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려서 무의식중에 생각했던 나이 먹음, 늙는다는 것의 의미는 인생의 지혜를 간직한다는 것, 현명해 진다는 것, 너그러운 눈을 가진다는 것 등 긍정적인 것들과 어떤 연관을 맺어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나이에 이르자 늙음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을 듣게 되고, 다른 면들을 보기 시작했다. 고집이 세지는 것, 욕심이 많아지는 것,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 것. 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것과 막무가내 공룡으로 화석화되는 것 중 과연 늙음이라는 것은 어느 쪽에 보다 가까운 것일까.

한국의 작가 박범신의 소설 ‘은교’가 출간된 지 2년 후 영화로 만들어졌고, 한국에서 보기 드문 속도가 느린 영화임에도 흥행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소설 ‘은교’를 읽었고, 정확히 1년 후 영화 ‘은교’를 보았다.‘고등학교 여학생과 70세 노인의 사랑’이라는 선정적인 홍보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은교’를 찾았고, 그로 인해 소설 역시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은교’가 영화로 세상에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70세 이적요의 노인답지 않은 탐욕, 혹은 추잡한 욕정을 발견한 듯하다. 그리하여 관객들은 이적요라는 캐릭터에게 돌을 던지거나, 그 뒤에 있는 작가 박범신에게 손가락질을 시작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늙음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할 수 있었고, 영화를 보면서 1년 전 잃었던 성찰의 감동을 다시 얻었던 나로서는 이와 같은 반응이 당혹스러웠을 뿐이다. ‘은교’를 두고 우리는 늙음에 대해서 왜 이렇게 다르게 읽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얼마 전 우연찮게 작가 박범신의 영화 ‘은교’ 개봉 후 가장 최근의 인터뷰를 읽을 수 있었다. 작가의 답변에서 나는 그가 책을 통해 미처 드러내지 못했던 촘촘한 사고의 틈을 접하면서 그의 풍성한 성찰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인물 이적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이자 자신의 늙음에 대한 고백이기도 했다.

“노인은 욕망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은 폭력적 시선이다”라는 말에는 이적요 아니, 박범신의 솔직한 고백이 담겨져 있으며, “이상하게 상처에 대한 내공은 쌓이지 않는다”라는 말에는 늙음의 본질이 반영되어 있었다.

늙음을 아름다움, 현명함, 삶에 달관하는 것, 한없이 너그러운 것이라며 무의식 중에 무섭게도 날 묶어 세워뒀던 추상적이며 유아적인 관찰이‘은교’에 의해 무참히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늙어가는 것이 슬프다고 말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인정하는 것이기에 의연해 보이지 못할 지라도, 그것이 사실이고 그런 욕망을 무시했던 것은 폭력과 다름 아니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늙음은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아니다. 지혜로워지는 것도 어린 아이가 되어가는 것도 아니다. 이적요는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에 대한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 또한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고 말했다.

늙어가는 것은 젊음에서 밀쳐지는 것이며, 죽음을 마주보는 것이며, 돌아갈 수 없기에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며, 슬프고 애처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적요는 아름다운 젊음에 대해 그리워 한 것이며, 그 젊음을 찬양한 것이며, 그로 인해 다시 잠깐 젊음을 맛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충실한 본능이자, 살아있는 자의 권리이자, 누군가에 의해 판단될 수 있는 가치 그 이상이다. ‘은교’에게서 나이 먹음에 대해 배운 것 같다.


<문선영/퍼지 캘리포니아 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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