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6-2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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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없었던 아버지는
저녁이면 한 마리 고래가 됐다
단골집이 있을 법도 한데
늘 왁자지껄한 낯선 바다를 찾는 아버지
나는 단박에 찾아낼 수 있었다
아버지 왼쪽 팔뚝에 새겨진 고래 한 마리가
이리저리 뛰어 올랐다
고개를 젖히며 호탕하게 웃는 아버지를
나는 선뜻 부르지 못했다
그냥 기다리는 게
아버지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로부터 정박을 강요받은 탓에
역마살이 꼈다던 아버지의 생은
말문을 닫아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면
바다를 다 회유한 아버지가 날 발견하고는
넓은 품에 안아 올려 함께 빙빙 돌았다
비릿한 바다 냄새 같은 아버지의 일대기가
내 유년의 바다를 만들고 있다
아.버.지.

-성명남(1962 - ) ‘아버지 고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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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속의 아버지는 많은 소시민 아버지와 같이 저녁이면 고래가 된다. 펼쳐진 바다를 헤엄치며 호탕하게 웃고 이리저리 뛰어오른다. 아버지를 데리러 술집에 찾아간 어린 화자를 빙빙 돌리는 술고래. 술의 힘을 빌려야만 잠시 바다로 떠날 수 있었던 그 고래들의 허세에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런데 술 한 모금도 안 하셨던 우리 아버지는 바다로 떠나지 못하는 답답함을 평생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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