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6-21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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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가장 길게 혀를 빼어
지상을 오래 핥는 날
상처에 닿을 때마다 붉어지는 혓바늘
하염없이 핥아주는 것밖에
해줄 것이 없는
늙은 암캐의 혓바닥처럼
서러운 온기에
온 머리가 젖어 꿈이 맑아진 풀잎들
치유는 핥을 수 있는
따스한 거리에 있어
핥을 수 없는 곳마다 덧나는 상처들
혓바닥이 지난 곳마다
매미가 자라고
사슴의 뿔이 떨어진다
사람의 눈동자가
지상에서
가장 먼 곳에 올라 맑게 씻기는 날

- 박현수(1966 - ) ‘하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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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살도 새끼를 핥아주는 늙은 암캐의 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방사선이 암을 죽이기 위해 다른 세포들도 죽이듯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저리 세상을 태우고 있는 것일까. 이 햇살이 충분히 대지를 핥고 나면 매미가 자라고 사슴에겐 새 뿔이 돋나 보다. 캘리포니아의 과일들도 단맛을 듬뿍 품게 될 것이다. 우리들 몸과 마음에 덧난 상처들도 다 태워지고 맑게 씻기게 되면 정말 좋겠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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