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해외서 보내는 노후

2012-06-14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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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갈수록 가난해지면서 반대로 많아지고 있는 것은 은퇴 후 삶에 대한 불안이다. 미국의 가구당 순자산액이 몇 년 전에 비해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정부발표는 날로 팍팍해지고 있는 미국인들의 경제적 현실을 보여준다. 게다가 소셜시큐리티의 미래조차 갈수록 불투명해지니 은퇴 후 수 십 년을 더 살아야 하는 미국인들의 걱정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경제상황과 맞물려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은퇴자들의 해외이주다. 아예 외국으로 나가서 은퇴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연방정부가 매달 해외로 발송하는 소셜시큐리티 수표는 무려 40만장에 달한다. 소셜시큐리티를 미국 내 은행구좌로 받는 인구까지 더하면 약 100만명에 가까운 미국인들이 해외에서 은퇴 후 여생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해외이주 은퇴가 보편화 되면서 이를 다룬 언론보도들도 쏟아져 나온다. 11일자 월스트릿저널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은퇴생활을 하고 있는 금년 68세의 주디스 슈나이더 부부의 기고를 실었다.

변호사로 캘리포니아에서 살았던 주디스는 우연히 방문한 발리의 매력에 빠져 7년 전 은퇴하고 아예 이곳에 정착했다. 미국으로 되돌아와야 할 건강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겠다는 것이 부부의 계획이다.

슈나이더 부부는 전경 좋은 곳에 있는 0.5에이커의 땅을 20년간 5만달러에 리스한 후 18만달러를 들여 2,000평방피트짜리 빌라를 지었다. 부부는 발리가 선사하는 좋은 기후와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한 달 1,000달러면 빌라 유지에서부터 교통, 음식, 여흥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낮은 생활비 등에 흠뻑 빠져있다.

음식은 한 달 75달러의 월급을 받는 요리사가 전부 해준다. 다만 의료수준이 조금 낮은 것이 문제인데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인근 호주나 싱가포르로 긴급후송해 주는 보험플랜에 가입해 별 걱정은 없다.

미국인 은퇴자들에게 인기 있는 국가는 멕시코, 타일랜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스페인, 그리스, 그리고 루마니아, 체코 같은 과거 동구권 국가들이다. 미국 노인들이 이런 곳을 은퇴지로 결정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도 있지만 무엇보다 1,000달러가 조금 넘는 수입으로도 충분히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카라과로 이주한 한 미국인은 “한 달 1,200달러면 잘 살 수 있고 여기에다 600달러만 더하면 정말 풍족하게 살 수 있다”면서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 경제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한다.

해외에서 노후를 보내는 일에는 물론 희생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이제는 연락과 통신이 이웃과 하듯 자유롭고 저렴해졌다.

또 은퇴 후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데 옛날 친구들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면 오히려 건강한 은퇴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눈만 조금 돌려 보면 새로운 선택들이 놓여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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