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감자’
2012-06-04 (월) 12:00:00
우리나라에는 한 해 제일 일찍 수확하는 ‘하지감자’가 있다. 보리타작하기 전, 6월에 들어있는 절기 ‘하지’ 를 전후해 캐서 먹는다고 해서 ‘하지감자’ 라고 한다. 옛날 우리가 겨우내내 가을 농사 식량으로 살다가 봄이 시작되면서 모든 양식이 바닥이 나고 햇보리가 날때까지 연명하며 기다릴 수 있는 생명과도 같은 귀한 감자였다.
겨우내 따뜻한 아랫목에다 작은 밭을 만들어 정성을 들여 싹을 내서 이른 봄에 파종을 잘하면 ‘하지’ 때에는 걷어 들여 먹을 수 있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의 보리를 보며 이 감자로 `보릿고개’를 넘었다.
사람마다 배고픔을 넘긴 세월은 다를 것이다. 이 ‘보릿고개’를 넘는 동안 굶주려 시골 학교에서는 통학 거리가 먼 학생은 걷기가 힘들어 결석을 했고 잠정적으로 휴교도 했다. 혹 도시락을 싸온 학생들은 조금씩 덜어서 점심이 없는 학생들과 나눠 먹곤 했다.
봄이면 찾아 들던 이 ‘보릿고개’는 없어졌다. 먹을 것이 지천이고 풍족한 물자 속에서 생각만 바뀌면 감사한 것들을 수없이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은커녕 불만과 불화로 괴로움으로 차 있다. 있는 자는 더 가지려 하고, 없는 자는 없는 자 대로 박탈감이 더 깊어간다.
학교에서 친구가 입고 있는 비싼 명품 잠바를 빼앗기 위해 살인을 마다않는 어린 학생의 의식, 왕따와 학교 폭력 사태가 말해주는 잔혹성과 난폭성은 마음을 섬뜩하게 한다. 수천억의 은행돈을 빼돌린 은행장이 중국으로 밀항 하려다 체포돼 유치장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권력의 실세들이 엄청난 뇌물을 받고 청탁을 받았다가 쇠고랑을 차는가 하면 승려들이 호텔방에 모여 술, 담배를 피우며 도박판을 벌인다.
오늘 점심상에 껍질 채 찐 붉은 감자가 올라왔다. 하나를 집어 껍질 채 먹어 본다. 기억 속에 남아 있던 허기진 지난 세월이 떠올려지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박준업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