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개종 지지부진에 어린이·여성 집중공략

2012-05-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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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디에고 미션 ②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58]

개종 지지부진에 어린이·여성 집중공략

John Kim의 Spanish Class (323)346-7749

샌디에고의 최초의 미션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미션 팀이 인디언 원주민들로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디언들은 이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들의 미션활동은 그 후에도 꾸준히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날 때까지 단 한 명의 인디언도 기독교인으로 만들지 못했다.

식수의 부족에다 배고픔과 인디언의 습격 등 수많은 실패와 역경에도 불구하고 샌디에고 미션은 그런대로 건재하였다. 1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소수 인디언들을 개종시킬 수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신부들은 기막힌 묘책을 찾아내 인디언들을 개종시키기 시작했는데, 그 묘책이란 우선 어린이와 여성들을 먼저 개종시키는 것이었다.

신부들은 유럽에서 가져온 구슬이나 액세서리 혹은 음식으로 유혹했고, 그러면 남편은 자연히 가족을 따라 개종했다.
아이들은 교회의 사택에서 합숙생활을 했고 세례를 통해 결혼한 부부들은 인근의 오두막이나 흙벽돌 집에서 생활했다. 교회의 종소리에 따라서 그들은 기도하고 식사하고 일을 했다.


1775년 11월5일 미션 산디에고 데 알칼라(지금의 샌디에고)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나왔다.
쿠메야이(Kumeyaay) 족이라는 인디언들은 그들의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살았는데, 11월5일 자정이 지나자 인근 부족들과 합세해 800여명으로 구성된 전사들로 하여금 교회와 마을을 공격하게 했다.

이들은 당시 35세였던 루이스 하이메(Luis Jaime) 신부와 민간인 등을 붙잡아 처형하고 성당을 파괴했다. 이 성당은 2년 뒤에 세르라 신부에 의해 내화성이 강한 흙벽돌과 기와지붕으로 재건축됐다.
이같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미션활동은 활기를 더해 갔으며, 그들의 순교로 인해 개종하는 인디언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1797년의 샌디에고는 ‘인디언 미션’을 통해 개종한 원주민을 포함하여 전체 인구 1,400명이 넘는 알타 캘리포니아에서는 가장 큰 미션이 되기도 했다.

당시 인디언들의 노동력이 없었다면 미션은 실패했으리라고 많은 학자들이 입을 모았다. 왜냐하면 스페인의 원조를 받는다는 게 아주 어려웠기 때문이다.
미션이 하나 생기면 곧바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성당이 하나 건립되면 집과 창고 등의 건물들도 함께 건축되었다. 그들은 농장과 함께 목장도 갖추고 있었는데, 수많은 가축과 양떼를 방목하여 키우는 인디언 카우보이들도 생겨났다.

이들은 털 깎는 작업부터 도살을 도맡았는데, 고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공급되고 가죽은 다른 물품과 교환하기도 했다. 양털은 인디언 아낙들이 주로 맡아서 털실을 만들어 옷을 해 입었으며 1832년에는 목축업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되었다.
한편 인디언 농장에서는 밀, 콩, 옥수수, 그리고 과수원에서는 사과와 배를 생산하여 교회뿐만이 아닌 인근의 마을이나 군대에까지 양식을 공급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고도 남을 때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돌아온 범선에 실어 멕시코로 보내기까지 하였다. 그 외의 어떤 인디언들은 대장간이나 목공소, 방앗간과 제련소 등에서 일을 배우기도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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