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말 한국학교에 가보면 어린 학생들 못지않게 한국말이 서툰 부모들이 있다. 2세 부모들이다. 자신은 한국말을 떠듬거려도 아이만은 한국말 영어 모두 잘 하는 완벽한 이중언어 구사자로 만들고 싶어 하는 2세들이 많다.
6살짜리 아들을 한국학교에 보내는 30대 중반의 2세 아빠는 말한다.
“어려서 한국말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어요.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려면 영어를 잘 해야 한다며 부모님이 집에서 영어만 쓰게 하셨어요. 지금은 그때와 세상이 달라졌어요. 최소한 2개 언어는 해야 살아갈 수 있지요.”
70년대 80년대만 해도 한인 2세들이 학교에 가면 다른 한인학생이 거의 없는 지역이 많았다. 한인들과 어울리는 유일한 기회는 한인교회를 통해서였고, 교회들이 대부분 한글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는 했지만 한국어의 무게감은 지금 같지 않았다. 자녀들은 대부분 영어만 쓰면서 자랐고, 그들이 지금 젊은 부모들이 되고 있다.
당시 부모들이 영어 사용을 강조한 것은 영어를 생활화하는 게 미국학교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20세기까지 이중언어에 대한 학계의 시각 역시 비슷했다. 어려서부터 두 언어를 사용하면 언어의 간섭 현상이 일어나 인식기능을 저해하는 것으로 학계는 믿었다. 이중언어는 아이의 학습능력과 지적 능력 개발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설이었다.
‘간섭’은 지금도 타당성 있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어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그중 한 언어만 사용할 때도 뇌에서는 두 개 언어 시스템이 모두 작동된다. 그래서 한 시스템이 다른 시스템을 방해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간섭’이 뇌의 발달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시킨다는 것이 최근 학계가 발견한 사실이다. 뇌가 내부의 갈등을 해결하느라 애를 쓸 때마다 그만큼 단련이 되어서 결과적으로 인식 능력을 증대시킨다는 것이다.
이중언어 사용 어린이와 단일언어 사용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에 의하면 이중언어 구사자는 주의집중력이 더 뛰어나고 주변 환경을 모니터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 영어 한국어를 말하는 사람은 상대에 따라 수시로 언어를 바꾸게 되는 데 그것은 마치 운전할 때 주변 환경을 모니터하는 것처럼 뇌가 효율적으로 상황을 모니터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2세 부모들이 아이들 손잡고 한국학교를 찾는 것은 단순히 언어능력 하나 더 키워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뇌 발달을 촉진해서 공부도 더 잘 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중언어 교육은 뇌를 단련시키는 운동, 뇌의 보약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중언어 구사가 어린 뇌에만 좋은 운동이 아니다. 노년층의 뇌를 활성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최근 UC 샌디에고의 신경정신과 연구진이 스페인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이중언어 노인 44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그 결과에 의하면 이중언어 능력이 뛰어날수록 치매 발병위험이 낮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뇌에는 치매라는 이끼가 낄 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