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면허 007을 소지한 수퍼 스파이 제임스 본드는 위험한 여자와 빠른 자동차 그리고 술을 좋아한다. 영웅호걸답게 호색호주하는 그는 미식가인데다가 감식가 뺨칠 만큼 술에 대해 일가견이 있어 동 페리뇽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면 그 제조년도를 알 정도다.
본드가 즐겨 마시는 술은 보드카 마티니로 그는 007 시리즈 제1편인 ‘닥터 노’에서부터 이 칵테일을 마셨다. 제1대 본드인 션 커너리는 여기서 임무 차 자메이카에 도착, 호텔에 짐을 푼 뒤 룸서비스를 시켜 미디엄 드라이 보드카 마티니를 주문한다. 그리고 “셰이큰 낫 스터드”라고 주의를 준다.
원래 마티니는 진과 버무스를 섞어 만드는데 이 영화에서 본드가 보드카 마티니를 마시면서 전 세계 술꾼들이 이 칵테일로 입맛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나도 가끔 친구 C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으면 그가 만들어주는 올리브를 두 개 얹은 보드카 마티니를 마시는데 골수까지 짜릿짜릿한 전율감을 주는 맛이 일품이다.
‘닥터 노’에서 본드가 마신 보드카는 스미르노프로 이 브랜드는 제5대 본드인 피어스 브로스난이 나오는 ‘다이 어나더 데이’에서 핀란디아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광고 효과 탓이다.
그 때 스미르노프가 집중적으로 술 판매 대상으로 겨냥했던 소비층은 21~29세로 007 시리즈의 팬들인 25~45세 연령층과 큰 차이가 났기 때문이었다. 즉 20대가 30~40대보다 훨씬 더 자주 어울려 다니며 파티를 즐기기 때문에 본드 영화에서 도중하차한 것이다. 한편 핀란디아는 이 브랜드를 즐겨 마시는 층이 25~39세로 본드 영화 팬들과 같은 연령층으로 나타나 얼른 시리즈에 동승했다.
보드카 마티니는 본드 소설의 작가 이안 플레밍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레밍은 1930년대 영국 첩보원으로 모스크바에서 활동했는데 그 때 보드카에 맛을 들여 후에 정통 마티니를 보드카 마티니로 새롭게 칵테일 해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본드가 이 술을 마시면서 보드카 마티니는 쿨 가이들의 술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는 11월에 개봉되는 007 시리즈 제23편 ‘스카이폴’(Skyfall)에서 제6대 본드인 대니얼 크레이그가 보드카 마티니 대신 보통 사람들의 술인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본드는 영화에서 네덜란드산 하이네켄 맥주(사진)를 병나발을 분다는 것. 물론 이것은 하이네켄 측의 광고 전략의 하나다. 영화에 상품의 상표가 보이도록 집어넣는 것을 ‘프로덕 플레이스먼트’라고 부르는데 회사들은 자기 상품이 화면에 얼굴을 내미는 대가로 영화사 측에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고 있다.
하이네켄도 본드가 딱 한 장면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과 함께 본드가 하이네켄 광고에 나오는 대가로 무려 4.500만달러를 지불한다. 이 액수는 ‘스카이폴’ 제작비 1억5,000만달러의 근 3분의 1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편 크레이그는 웹사이트를 통해 “그런 장면은 영화제작의 필요한 한 부분”이라면서 “유감스럽긴 하나 회사 제품 광고 없이는 영화의 막대한 제작비와 선전비를 감당해 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본드가 하이네켄을 마신다는 뉴스가 나가면서 시리즈의 열렬 팬들은 “본드가 돈에 팔려갔다”며 야유하고 있다. 세련된 신사요 터프한 쿨 가이가 보드카 마티니 대신 맥주를 마신다는 것이 어딘가 궁색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에서 본드가 아예 마티니를 안 마신다는 말도 없으니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 본드가 과거 영화에서 반드시 보드카 마티니만 마신 것은 아니다. 본드는 사실 알콜중독자나 마찬가지로 보드카 마티니 외에도 스카치, 버본, 브랜디, 모히토, 체리, 럼 그리고 맥주와 사케에 이르기까지 안 마셔본 술이 없다. 언젠가 본드가 소주도 한 잔 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그런데도 이번에 본드의 맥주 음주가 화제가 되고 있는 까닭은 그가 특정 상표의 술을 광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사 킬러 체면에 광고 모델이나 해서야 되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과거에도 본드가 자기가 즐겨 쓰던 물건의 모델을 다른 것으로 바꿔 골수팬들의 비난을 산 적이 있다. 본드(브로스난)는 지난 1995년에 나온 ‘골든아이’에서 그 때까지 자기가 애용하던 영국제 자동차 애스턴 마틴을 버리고 독일제 BMW로 교체해 특히 본드의 조국인 영국인 팬들의 분통을 터뜨렸었다. 본드가 자동차를 바꿔 탄 것도 역시 광고 탓.
샘 멘데스가 감독하는 ‘스카이폴’은 본드가 소속된 첩보부 MI6이 외부세력의 공격을 받으면서 본드가 자기 목숨을 내놓고 적을 제거하기 위해 활약한다는 내용으로 그의 적으로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그리고 본드 걸로는 베레니스 말로가 각기 나온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