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레미 린이 보여준 것

2012-03-08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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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지인의 고등학생 아들이 학교 농구팀에 뽑혔다.

감격한 이 부모는 어지간해서는 아들 딸 자랑을 안하는 관례(?)를 깨고 “운동 팀에 들어가는 것은 공부 잘해서 상 받는 것과는 다른 차
원의 기쁨”이라고 자랑했다.

사실 고교시절 운동을 하다가 포기한 자녀를 둔 한인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자녀들이 중학교 때까지는 재능을 보이지만 이후 체격이나 체력적인 한계를 느껴 그만두는 일이 많다고 한다.


부모들은 팀 내 협동과 단결을 중요시하는 운동 팀에서 대표 선수로 뛸 경우 대학 진학에 유리하다는 생각에 자녀들을 적극 지원하기도 하지만, 많은 시간 투자와 불투명한 전망-직업선수로서의 가능성까지 포함-때문에 일찌감치 꿈을 접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인 2세들이 미국의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아직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영역이 바로 스포츠다. 특히 풋볼과 야구, 농구 등 미국 내 인기 스포츠들의 경우가 그렇다. 이중에서도 농구는 어떤 의미에서 도달 불가 수준이다. 단순히 신장뿐 아니라 탄력있는 점프력, 체력 등에서 흑인이나 백인을 이기기가 가장 어려운 분야로 꼽혀왔다.

이곳에 대만계 제레미 린(뉴욕 닉스)이 뛰어들었다. 올 시즌 NBA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린은 아시안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맹활약중이다. 하버드 대 출신, 드래프트를 받지 못해 이팀 저팀을 떠돌았던 역경 스토리까지, 린은 신데렐라로서의 자격을 완벽히 갖췄다.

지난해 노조와 구단주의 갈등으로 경기 일정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면서 팬들의 외면을 받았던 NBA와 그동안 선수 부상 등으로 성적을 내지 못하던 뉴욕 닉스는 린의 등장에 화색이 돌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린의 가치는 더욱 두드러진다. NBA 팀 중 꼴찌에 가까웠던 뉴욕 닉스의 티켓 가치가 1위로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닉스 티켓의 가치는 130달러대에서 210달러대로 껑충 뛰었고, 닉스 구장인 매디슨 스퀘어가든의 자산 가치는 린의 등장이후 1억7,000만달러가 늘었다고 포브스가 전했다.

린의 시장 잠재력은 타이거 우즈나 마이클 조던 수준으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미국 내 아시안 아메리칸 인구는 1,730만명으로 전체의 5.6%이다. 이들은 캘리포니아와 뉴욕, 텍사스에 50% 이상 집중돼 있다. 캘리포니아 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으며, 뉴욕시와 LA, 샌프란시스코 등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두 자리 수 이상 몰려있다. 구매력은 지난 2009년 5,090억 달러에 달했다. 대만이나 중국의 인구를 감안하면 린의 시장 잠재력은 상상하기 어렵다.


린은 무엇보다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공부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아시아계 이민자 부모들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또 미국인들의 아시안에 대한 스테레오타입도 변화시켰다.

앞으로 린의 가치는 그가 얼마나, 언제까지 활약을 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에 대한 견제도 만만치 않게 심해질 것이다. 현재 린의 성공은 절반의 성공이다. 선수로서의 성장 가능성도 아직 불확실하고, 장담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아시안 아메리칸에게 운동 분야도 더 이상 유리천장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의 성
공이 대견스럽다.

<김주찬 뉴욕지사 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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