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샤 대군을 물리친 플라테아 전투가 벌어진 기원전 479년부터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399년까지의 80년은 그리스의 황금기였다. 경제적인 번영은 물론이고 문학, 철학, 과학, 역사, 조각, 건축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리스인들은 지금까지 유례를 찾기 힘든 업적을 남겼다.
그리스와 페르샤의 대결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싸움이었지만 그리스인들은 자유에 대한 열정으로 뭉쳐 페르샤를 물리쳤다. 한 사가는 두 나라의 객관적인 전력을 룩셈부르크 대 소련 정도로 평가했다.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 인 300명이 전멸하면서까지 보여준 결사 항전 의지가 산술적 계산으로 불가능한 결과를 가능케 했다.
플라테아가 그리스 황금기를 가능케 했다면 그리스 몰락을 자초한 것은 415년의 시실리 원정이었다. 당시 그리스 주도권을 놓고 스파르타와 전쟁을 벌이던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우군이었던 시실리를 굴복시키기로 하고 200척의 대함대를 이곳으로 보냈다.
실패할 경우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신중론도 있었지만 당시 가장 뛰어난 대중 선동가였던 알시비아데스는 여론을 찬성으로 돌려놓고 스스로 사령관의 한 명이 되어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나 결과는 재난이었다. 200척 배가 모두 부서지고 수 천 명의 아테네 해군이 전멸했다. 알시비아데스는 스파르타로 도주했다 나중에는 페르샤까지 가 조국을 배신했다.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참패한 아테네는 분풀이로 아테네의 약점을 ‘벌’처럼 수시로 찔러대던 소크라테스를 민주적 절차에 의해 다수결로 사형에 처했다.
그와 함께 아테네의 황금기도 끝났고 그 후 2,0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다시 찾아오지 않고 있다. 황금기가 찾아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 아테네 시내는 최루탄과 돌멩이가 비처럼 쏟아지는 바람에 유일한 자랑거리인 선조들의 유산을 보러오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끊겨 주 수입원이 위협받고 있는 지경이다.
유럽 제1의 선진국인 독일을 능가하는 과도한 복지 혜택으로 나라 재정이 파탄 나 구제 금융을 받아 겨우 연명하고 있는 데도 그리스 인들은 ‘50대부터 편안한 노후를 즐길 수 있도록 복지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정부는 물러가라’며 테르모필레의 스파르타 인들처럼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다.
그리스 최대의 사상가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두 민주주의를 경멸한 것은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현실로 그 실제를 봤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아테네 민주주의가 어떻게 시실리 원정으로 나라를 망치고 스승 소크라테스를 처형하는지를 직접 지켜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는 ‘배고픈 자가 권력을 잡는 제도’라며 그 체제 하에서는 국가의 앞날보다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13일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새해 예산을 선보였다. 지난 달 국정 연설 내용을 숫자로 옮긴 것에 불과한 이번 예산안에는 미국의 장래를 위협하는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등 사회 복지 비용 폭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이 부자 증세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3년 전 그는 임기 말까지 예산 적자를 5,000억 달러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올해는 1조3,000억, 내년에는 9,00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
그도 자기의 임기 중 불어난 4조 달러와 앞으로 10년간 늘어날 10조 달러의 국채가 미국의 장래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예산을 짠 것은 재선을 위해서는 표가 필요하고 표를 얻기 위해서는 인기 없는 복지비용의 구조적 수술보다는 부자 때리기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계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빚이 늘어 가면 미국도 지금 아테네가 걷고 있는 길을 가지 말란 법이 없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민주주의를 우습게 본 까닭이 이해가 간다.
<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