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나마 이야기

2012-01-28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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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가족들과 함께 파나마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1501년께 서방세계에 알려진 파나마는 폭이 좁고 옆으로 누운 S자 모양으로 생겨 있는데, 중앙은 화산으로 형성된 높은 산맥이고 양쪽 가장자리는 바닷가여서 산의 정글도 보고 바다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토목사업의 기적이라 불리는 파나마 운하였다.

북미와 남미를 잇는 교차점에 위치한 파나마 가운데에 위치한 파나마 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동맥과 같은 수로이다. 폭이 좁은 파나마 땅을 통과하는 수로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은 16세기 초 컬럼버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박이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남미의 제일 밑 부분, 혼 곶을 돌아서 가려면 거리가 2만2,500km이지만 파나마 해협으로 갈 경우 9,500km로 줄일 수 있다.


이미 이집트 수에즈 운하 건설에 성공한 프랑스인들은 세계무역이 활발해지던 19세기 후반에 파나마 운하건설에 도전하였다. 그들은 육지를 해수면까지 파서 뱃길을 만드는 운하를 계획하였다.

프랑스인들의 계획은 그러나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난관에 부딪쳤다. 수에즈 운하의 땅은 모래였으나, 파나마 땅은 컬럼버스가 ‘딱딱한 땅’이라고 불렀던 돌산이었기에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진흙사태가 빈번하였으며 정글의 독사와 독충도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은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말라리아와 황열이었다. 6년 동안 프랑스인들은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나 2만2,000명의 희생자를 내고, 예정된 공사의 10분의 1도 못 마친 채 중단하고 말았다.

10여년 잊혀졌던 파나마 운하 공사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무역과 군사활동의 중요성을 재인식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20세기 초에 다시 시작되었다.

미국인 담당자였던 존 스티븐스와 군의관 고가스는 과거 프랑스인들의 처절한 실패를 통해 황열과 말라리아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길을 닦고, 위생적인 주택을 짓고 모기 망을 설치했으며, 모기의 서식처를 없애는 데만 2년 이상을 보냈다.

미국 기술진은 공사계획도 바꾸어, 해수면까지 파내려가는 방식을 피하고, 산의 계곡에 댐을 만들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고이게 하여 큰 인공호수를 먼저 만들었다. 인공호수와 바다 사이에는 수면의 높낮이 차이가 상당히 난다.

그래서 인공호수와 바다 사이에 배를 띄울 수 있는 넓이의 운하를 콘크리트로 만들고 물을 채우거나 빼서 배를 띄우거나 바다와 인공호수 사이를 지나갈 수 있게 하였다.


미국의 희생자도 5,000명에 달했으나 기술진은 6년에 걸쳐 호수를 포함하여 총 80km에 해당하는 운하를 기적같이 완성시켰다. 운하가 만들어진 과정과 운영되고 있는 것을 자세히 보면서 미국의 기술과 꿈에 대한 집념이 참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아무도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 그 일을 시작했던 프랑스인들도 매우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새로운 도전을 했고 실패했지만 실패를 통해 문제를 발견한 것이 결국에는 기적의 기초가 되었다.

오늘날 세계인들이 누리는 운하의 혜택을 보며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과거를 돌아보면 우리는 실패와 문제들 때문에 낙담한 적이 많다. 그러나 그 실패와 문제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좋은 교훈과 약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 과정들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향상된 자신을 만들어왔고, 이웃을 더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었다.

새해에도 우리는 많은 도전 앞에 서있고, 여러 문제들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 하지만 도전은 기적을 낳는 축복의 시발점이요, 문제와 실패는 우리를 도와줄 동료라고 생각하니 용기가 솟아오른다.


김홍식 /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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