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1-12-2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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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왔네
외등도 없는 골목길을
찹쌀떡 장수가

길게 지나가네
눈이 내리네

- 민영(1934년~ ) ‘겨울밤’ 전문



짧은 묘사가 이렇게 긴 여운을 남기는 시도 드물 것이다. 가난한 고향 마을에는 찹쌀떡 장수 같은 게 아예 없었다. 늦은 밤, “찹쌀떠억” 하는 소리가 신촌의 골목길로 면한 내 조그만 창을 통해 들려온다. 그때는 왜 그걸 사먹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까. 찹쌀떡 장수는 자기가 받아온 떡을 다 팔 수 있었을까. 그 때, 나는 무슨 일들로 잠을 자지 않고 찹쌀떡 장수가 ‘길게’ 지나가는 것을 듣고 있었을까. 통금 사이렌이 울린다. 낯설고 추운 서울의 겨울밤이 길게 지나간다. 눈이 내린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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