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1-12-1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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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역이었다
연착된 막차를 홀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톡톡 이 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플랫품 위에서 한 노숙자가 발톱을 깎고 있었다
해진 군용 점퍼 그 아래로는 팬티 바람이었다
가랑이 새로 굽슬 삐져나온 털이 더럽게도 까맸다
아가씨, 나 삼백 원만 너무 추워서 그래
육백 원짜리 네스카피를 뽑아 그 앞에 놓았다
이거 말고 자판기 커피 말이야 거 달달한 거
삼백 원짜리 밀크 커피를 뽑아 그 앞에 놓았다
서울행 열차가 10분 연착될 예정이라는 문구가
전광판 속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천안두리인력파출소
안내시스템 여성부 대표전화 041-566-1989
순간 다급하게 펜을 찾는 손이 있어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게서 따뜻한 커피 캔이 만져졌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온다던 그 시였던가
여성부를 이성부로 읽던 밤이었다


김민정(1976 - )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전문


시의 제목에서 젊은 시인들의 시를 감상하는 열쇠를 찾았다. 그녀가 처음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알려고 하지 말고 그들의 마음이 돼 편안하게 느껴보려 한다면 시가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연착한 막차를 기다리는 썰렁한 대합실에서 주머니 속의 커피 캔이 주는 의외의 따뜻함을 느껴본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온다던 이성부 시인의 시를 떠올린다. 그녀에게 이미 찾아온 봄이 우리의 손끝에 함께 느껴진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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