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포드와 코넬을 포함한 일부 대학 보충 지원서의 에세이 제목은 이렇다. “당신의 지적 관심사(intellectual interests)에 대해 서술하라”
이런 주제를 두고, 학업이나 교내외 활동에서 뛰어난 학생들이 “에세이 질문 자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학에서 지원자의 지적 관심사를 물어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정답을 잘 찾아내는 지원자보다 질문을 잘하는 학생을 뽑겠다는 의도다. 지적 관심사는 호기심과 질문에 직결돼 있다. 아이작 뉴턴이 정구 게임에서 공의 날아가는 방향과 각도에 호기심을 보인 것처럼 그런 학생이라면 대학에 들어와서 왕성한 호기심으로 연구에 매달릴 것이요, 나아가 이미 설정된 이론이나 전통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결국 새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묵언수행’을 하는 학생으로 가득 찬 질문 없는 강의실, 시험 답안지 작성을 목적으로 듣는 수강자는 학문 발전의 방해요소라는 것을 대학은 안다.
둘째, 유타 밸리 대학의 비즈니스 교수 스티븐 마란빌이 학교에서 쫓겨난 사건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학점을 주는데 그치는 교수가 아니라 지적 갈증을 일으키는 촉진제 역할을 하겠다”는 신념으로 마란빌 교수는 소크라테스의 방법을 동원, 질의 문답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팀을 만들어 그룹 토론을 시키며 강의실에서 배운 이론을 사회 현장에서 적용해보라고 지도했다.
그러나 그의 교수법은 학생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수강자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끊임없이 퍼붓는 교수의 질문이 아니라 시험 예상문제와 요점 정리다”라며 학교 당국에 교수를 향한 불만을 터뜨리고 항의를 한 것이다.
이처럼 시험 위주로 학업 분위기가 바뀐 대학 캠퍼스에서는 소크라테스식 수업방법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학생들에게는 지적 목마름, 호기심이란 단어가 생소하게 되었다. 주어진 과제물을 읽으며 텍스트와 대화를 나누고 “더 연구해보고 싶다”라는 욕구 혹은 자신의 선입견을 깨는 “유레카(바로 이거야!)”를 만끽하는 모습은 더군다나 찾아보기 어렵다.
셋째, 지적 관심사는 대학 수업에서 필수 조건이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의 소피 스텀 교수는 5만명 대학생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와 200개 논문을 평가한 결과, 대학 학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지능과 꾸준한 노력을 꼽았고, 그 둘보다 더 중요한 세 번째 주춧돌은 지적 갈증이라고 역설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내재된 인간의 호기심은 초ㆍ중ㆍ고교를 거치며 조직적으로 말살되고, 점수와 등수라는 등쌀에 눌려 배움을 향한 질문은 압사 당했다. “교육은 학생들의 머리를 채우는 게 아니라 지식에 대한 갈증을 유발시키는 것”이라는 그럴듯한 표어를 내세우는 학교는 갈증보다는 구토를 일으키는데 더 노력했다.
지적 갈증은 책장을 넘기는 것으로만 생성되거나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플라톤의 ‘향연’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지(知)’에 대한 열정은 카페에서 먹고 떠들며, 오솔길을 거닐며 대화를 나누고, 아니면 홀로 고독을 즐김으로 심화되어 왔다.
인류 역사상 가장 호기심이 많은 사람으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주변을 거닐며 수시로 질문을 던졌다.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로 인해 생긴 원의 모양이 왜 다를까, 공중에 새가 떠있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항상 노트와 연필을 지니고 다니면서 그런 의문이 생길 때마다 기록했다. 그가 남긴 노트는 7,000장이 넘는다. 그 중 18장을 빌 게이츠가 1994년11월 3,000만 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대니얼 홍 / 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