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재외국민 선거’의 절차가 유권자 등록 접수 개시와 함께 본격 막이 올랐다. 지난주부터 이와 관련한 기사와 특집 시리즈를 지면에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정작 투표를 해본지가 정말 오래됐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미국에 와 산 지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지라 미국의 선거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한국에서 대학 시절 대통령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한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이제 거의 사반세기 만에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벼운 흥분을 느끼고 있지만, 이를 위한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에 참여하는 일은 그야말로 ‘일’이 되고 있다. 실제 투표를 위한 방문이야 그렇다 쳐도, 등록을 위해서도 총영사관을 직접 찾아가야 하니 번거로움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근거리 거주자도 이런 상황인데 공관까지 차로 몇 시간씩 걸리는 곳에 살고 있거나 항공기를 이용해야 하는 원거리 거주자들은 더욱 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모처럼만에 대한민국 국적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인데 번거로움 정도야 참고 참여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냥 ‘번거로움’ 수준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적, 금전적 투자 내지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면 이는 다른 문제다. 결국 계속 지적돼 온 대로 유권자 등록과 투표 장소가 재외공관으로만 제한돼 있고 재외국민이 부재자투표 등 다른 방법으로 투표를 할 수 있는 길이 원천 봉쇄돼 있는 점이 첫 재외선거가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는데 가장 큰 장애임이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제 투표 참여가 저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유권자 등록 개시 후 나흘이 지난 16일까지 LA 총영사관에 실제 유권자 등록을 마친 한인들의 수는 단 188명이라는 집계다. 이를 아주 단순화시켜 계산을 해보면 우려가 기우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정도 추세가 유지된다고 가정할 경우 내년 2월11일 유권자 등록 마감일까지 LA 총영사관에 등록하는 선거인 규모는 불과 4,300여명 정도라는 계산이다. 한국 중앙선관위가 추정하고 있는 LA 총영사관 관할지역내 한인 유권자수가 24만여명이라는데 이 정도라면 유권자들의 등록률이 2%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예측이 너무 단순한 가정에 불과하고 실제 유권자 등록과 투표에 참여하는 한인들의 수가 훨씬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보다 열 배가 된다고 해도 투표율이 20%를 넘지 못할 것임이 분명한 상황이다.
애당초 재외국민 참정권 도입은 한국을 떠나 살고 있는 한인들의 ‘헌법적 권리’를 확고히 보장하기 위한 취지였다. 해외 한인 선거권 제한에 대한 미주 한인사회 단체들의 헌법소원 제기 등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 그동안 무시돼 왔던 귀중한 권리를 찾게 된 것 아닌가. 재외선거가 이뤄지게 됐으니 ‘원칙’은 회복했지만 그 방법상의 문제로 실제 권리 행사가 방해를 받고 있다면 결국 여전히 헌법적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재외선거 투표소 확대 등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이 다시 제기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재외국민 참정권은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가능해졌지만, 이번에도 헌법재판소가 판결해주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한국의 정치권은 해외 한인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신속히 재외선거인이 투표하기가 쉬워지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선거부정 시비 우려와 공정성을 문제로 내세우지만 찾아보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 등 국가에서는 우편투표는 물론 전자투표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 같은 IT 강국이 이를 못할 이유도 없다. 이것이 당장 어렵다면 우선 공관으로만 제한돼 있는 투표소를 대폭 늘리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관리하는데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도 글로벌 시대에 해외 한인들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또 해외 한인 유권자들이 투표지를 공증해서 직접 한국의 해당 선관위로 보내는 방법 등 합리적이고도 효율적인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김종하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