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1-11-1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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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디찬 시멘트 축대 위 가파른 곳의
금간 틈서리를 비집고 살던 풀포기 하나
바람결에 나 이렇게 잘 있으니 염려 말라고
온 몸으로 흔들어보이던 고갯짓이
지금은 어디 갔나 모진 비바람 끝에 축대 무너지고
무지막지한 흙더미 그 위로 쌓이고 덮여
이젠 아무도 깔린 풀포기를 떠올리지도 않는데
더욱 까맣게 흔적조차 잊어가고 있는데
애잔한 한 포기 목숨 죽었는가 살았는가
즐겨 이곳을 찾던 채마밭 콩새들도 오지 않고
낯설구나 어제 모습 하루아침에 바뀌어지다니
허물어진 성터에 오른 듯 마음만 소란할 뿐
내가 오늘도 기웃거리며 돌 틈 뒤지는 것은
거친 흙더미를 솟구쳐 하늘로 파리한 얼굴내밀
무명초, 네 믿음의 힘을 보려 함이다

이동순(1950 - ) ‘무명초’ 전문

모든 꽃에는 이름이 있기에 ‘이름 없는 꽃’이란 말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시인이 있었다. 그러나 이름이 없다(無名)는 말은 이름이 실제로 없다기보다는 이름이 나지 않거나 알려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시인은 무너진 축대 속에서도 싹을 틔우는 풀을 ‘無名草’라 부른다. 이 때, 무명초는 명사가 아니라 소망의 힘을 놓지 않는 모든 존재를 가리키는 대명사다. 어두움을 견디고 끝끝내 하늘을 보고 마는 무명의 민초들에 대한 헌사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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