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1-11-1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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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수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1926 - 1956) ‘세월이 가면’ 전문

‘상주들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 역할을 하는 것이 시’라는 말에 동감한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계절이 되면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조금씩은 감상적이 되고 울고 싶어질 때, 대신 울어주는 이런 시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 벤치에 함께 머물던 사람의 이름은 기억할 수 없어도 그 입술과 눈동자, 따스한 체온이 우리들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인가 보다.


김동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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