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반갑다, 김한솔”

2011-10-28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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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만일 그를 만 나면 “반갑다, 김한솔”하며 덥석 손을 잡고 악수할 것 같 다. 신문에 몇 차례 실린 기 사를 주의 깊게 읽는 동안 어 느새 친구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반갑 다’는 지나친 과장이 아닌가.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면 이 글 을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

‘반갑다 1’ - 그는 아주 친 숙한 한국의 얼굴이다. 서울 이나 뉴욕에서 만나는 한국 계 소년들의 얼굴이다. 부유 한 가정에서 영양 공급을 잘 받은 편안한 얼굴이 알맞게 미소 짓고 있으니 그의 건강 이 반갑다. 그가 속한 북한 어린이들이 모두 그러냐고 묻 고 싶지만 그냥 지나간다. 한 솔이 책임질 일이 아니니까.


‘반갑다 2’ - 그는 평양을 벗어난 외국에서 공부한다. 부모의 가정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유년기를 지났으니 친 구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도 좋겠다. 그것도 다 른 문화권의 친구들과 생활 하고 있으니 더욱 좋은 환경 이다. 옆에서 시중 드는 사람 들을 배제한 것과 따로 경호 인이 있다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자기 스스로 성장에 노력할 수 있는 시기다.

‘반갑다 3’ - 그는 북한과는 판이하게 다른 나라들의 생활 을 직접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 왜 북한사회의 발달이 더딘 지, 아직도 가난한 지, 배 고픈 사람들이 많은 지... 등을 깊이 생각해 볼 기회이다.

‘반갑다 4’ - 어떤 한 가지 일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 견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 다. 최고선의 방법을 찾는 방 법에 익숙하게 될 것이다.

‘반갑다 5’ - 언젠가 읽은 기사 중에, 유럽의 어떤 나라 에서 남북한 학생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며 서로 알고 지 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남북 한 통일의 문제를 어쩌면 해 외 한국계 동포들의 열성과 지혜로 풀게 될 지도 모른다 는 생각을 했다. 국내보다 세 계정세에 예민한 것이 해외 생활이니까.

사실은 필자가 맡고 있는 학 교에도 다른 ‘한솔’이 있다. 이 름이 좋아서 그를 부를 때마다 싱그러운 소나무 향기가 교실 에 가득 퍼지는 느낌이다.

김한솔이 ‘한국기자’ 만나 기를 꺼린다는 기사를 읽었 다. 그러나 그들이 왜 만나고 싶어할까 생각해 보자. 관심 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기 자를 비롯한 우리들은 알고 싶은 것이다. 김한솔과 그 연 장선에 있는 북한을 좀 더 자 세히. 즉 통일 방법 연구의 자 료로 삼기 위해서다.

한국의 통일은 우리의 문 제이며 세계의 과제라고 하 겠다. 현재의 판세로 보면, 한 국을 강대 세력의 완충지대 로 유지하려는 눈치다. 우리 가 세계를 설득하는 방법은 ‘한국의 통일이 세계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라는 점을 이 해시키는 일이라고 본다.


김한솔이 다음 동시를 읽 으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되었다, 통일. 무엇이? 산맥 이. 그렇다!/ 우리나라 산맥은 한줄기다, 한줄기./ 되었다, 통 일. 무엇이? 강물이. 그렇다!/ 우리나라 강들이 바다에서 만 난다./

되었다, 통일. 무엇이? 꽃들이. 그렇다!/ 봄만 되면 꽃 들이 활짝 핀다, 일제히./ 되었 다, 통일. 무엇이? 새들이. 그렇 다!/ 팔도강산 구경을 마음대 로 다닌다./ 통일이 통일이 우 리만 남았다. 사람만 남았다.” <윤 석중‘, 되었다 통일’ >

허병렬/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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