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1-10-2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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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던, 그 속에서
하늘하늘 팬티 한 장 꺼내들고 어머니
볼에 따뜻한 순면을 문지르고 있다
안감이 촉촉하게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도 여자로 살게 하는 한 무늬였음을
오늘은 죄 많게 그 꽃무늬가 내 볼에 어린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순간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던 것처럼
웬만해선 팬티 속 꽃들은 시들지 않으리라
뜬 눈송이 몇 점 다가와 곱게 물든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맑은 꽃물이 똑똑 떨어진다.

김경주(1976 -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부분


그렇게 늘 꽃 무늬 팬티를 입으세요. 웬 만해선 시들 지 않고, 빨 면 맑은 꽃물 이 똑똑 떨어 지는 꽃무늬 팬티. 그래서 마음만은 이 팔청춘으로, 세월이 주는 주름살일랑 벗어버리고 티 없이 밝은 소녀, 싱싱한 여자로 지내 세요. 어머니, 할머니.

김동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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