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잡스의 직업 정신과‘아빠 사랑’

2011-10-2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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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한 평생 일에 몰두했다. 자라나는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그는 “나의 자녀들이 나를 알기를 원해서” 자서전 집필을 허락했다고 설명 했다. 공감할 수 있는 말이지만, 잘못 받 아들이면 위험할 수도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가정과 직장은 많은 현대인들에게 대립적인 관계로 다가온다.

홀로 가정의 수입을 책임지던 60년대까 지 남성들은 직장 일에만 몰두했고, 자녀 양육이나 가사는 여성의 몫이었다. 70년 대에 들어서면서 여성 해방운동과 가파른 물가상승 등의 결과로 여성들이 직업전선 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혼율과 청소년 탈선 증가라는 결과를 낳았고, 가 정이 희생양이 된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미국인들은 80년대에 접어들며 가정과 직 장 사이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직장 일과 가사의 짐을 혼자 도맡아하 다 지친 여성들은 남편들의 공정한 참여 를 요구하면서 가정에서의 남녀 역할 분 담, 아빠와 자녀 관계, 남성에 대한 정의 등이 사회적 이슈로 뜨겁게 떠올랐다. 이 를 주제로 한 연구와 대화가 사회 깊숙이 번져나가고,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직장의, 직장에 의해, 직장을 위해서만 살던 남성 들이 가정으로 돌아와 드디어 인생의 참 맛을 보기 시작했다.

지난 1977년 12%의 남성들이 가사와 직장 사이에서 갈등을 느꼈으나, 1989년 에 실시된 조사에서는 이 수치가 72%로 늘어났다. LA타임스가 1990년에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39%의 남성들이 할 수 만 있다면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직장을 포기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오랫동안 격리되 었던 ‘남성다움(manhood)’과 ‘부권(fatherhood)’ 을 연결 짖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자녀양육과 가사에 아빠들의 참 여를 권장하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된 것 이다.

이와 함께 또 하나의 중대한 발견이 있었다. 자녀 성장에 ‘아빠 사랑’이 중대 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혼자서 줄 수 없는 독 특한 영향을 아빠가 자녀에게 주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아빠의 영향으로 자녀들 은 사회적응 능력, 문제 해결 능력, 임무 완성 기술, 주고받는 기술 등의 발전과 다양한 사회 환경을 체험하게 된다.

보편적으로 볼 때 양부모로부터 양육 받은 자녀는 다양한 자극을 받게 되어 감성과 지성 모두가 건강하게 발달되며, 인식 능력과 협동심, 상대에 대한 이해심 이 아빠의 참여 없이 자라난 자녀보다 뛰어나고, 다양한 한경에 쉽게 적응하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아빠가 부재한 가정에서 자라난 청소 년들이 성격장애, 마약, 음주벽, 범죄, 임 신, 자살 등에 더 많이 빠져 든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고, 72%의 청소년 범죄 가 아빠와의 긴밀한 관계가 부족한 아이 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연구 결과 등을 통해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선물(presents) 이 아니라 가치 있는 시간을 함께 보 내 주는 아빠의 존재(presence)라는 인식 이 미국 사회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커리어 면에서 잡스는 성공했다. 고로 아빠로서도 성공했다고까지 평가할 수는 없다. 책임감 있는 부모에게 입양된 후 잘 양육 받아 원하는 삶을 산 그가 자기 자 녀들의 성장과정에 깊이 참여하지 못한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생의 말기 때 단 한 번의 이메일 연락 이라도 구했던 친아버지의 간청을 “만날 이유 없다!”며 끝내 거부했던 잡스. 성공 과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도 치유되지 않 은 상처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과 관련한 잡스의 열기는 사회에, 아빠의 열기는 가 정과 자녀들의 마음에 남기를 바란다.


박창형/ 한인타운 연장자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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