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1-08-3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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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커피 뽑는 것도 시비꺼리가 될 수 있는지, 종이컵 속 커피 위에 뜬 거품을 걷어내면 “왜 거품을 걷어내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커피의 깊이를 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마음에 없는 말일 수 있다. 인스턴트 커피에 무슨 근사한 깊이가 있느냐고 물으면, 대단치 않는 깊이에도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해 준다. 모두 얕다. 기실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단찮은 깊이까지 사랑한다 해도, 커피는 어두워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실 어둠의 깊이를 얕볼 수 없다. 싸고 만만한 커피지만, 내 손이 받쳐 든 보이지 않는 그 깊이를 은밀하게 캐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걸 누가 쉬이 들여다볼 수 있단 말인가?

이하석(1948 - ) ‘깊이에 대하여’ 전문

쉽게 쓰고 버리는 인스턴트 시대에 ‘깊이’라는 게 있을까. 자판기 커피만 해도 그렇다. 언제 어디서 뽑아 마셔도 일정한 온도와 색깔, 달달한 맛이다. 깊은 맛이라곤 없다. 그러나 비록 손바닥 안의 커피라 할지라도 바닥을 볼 수는 없다. 나름대로 아픔과 어두움, 그리고 깊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판기 커피가 갖고 있는 깊이에 대한 관심이, 얕고 가벼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연민과 애정으로 읽힌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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