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1-08-1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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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걸린 시계방 옆 좁은 다리 위로 자동차들이 지나다닌다
인형공장 가파른 계단을 내려온 파란 눈의 여자가 마른 낙엽을 밟으며
시계방 앞을 지나가면 시계방 앞에서 꽃을 팔던 아가씨도
꽃 파는 아가씨 옆에서 풀빵을 팔던 남자도
검은 개와 함께 산책을 하던 여자도
무지개를 밟고 집으로 돌아간다
책을 읽던 시계방 주인과 시계방 안락의자에 누워
꾸벅꾸벅 졸던 고양이도 검은 개와 함께 여자를 따라간다
무지개를 찾아 언덕을 올라온 사람이
언덕 꼭대기에 도착하면 풀빵기계와 인형공장
가파른 계단들이 사라진다
시계방 옆 좁은 다리도 다리 위를 지나다니던 자동차들도
아름답게 반짝이던 무지개도 여자들이 밟았던
낙엽들과 함께 사라진다
모두 사라지고 무지개를 찾아 언덕을 올라온 사람만 남는다

- 김참(1973 - ) ‘무지개’ 전문

무지개가 뜨면 우리는 곧잘 지나온 동심의 세계 혹은 무지개가 닿아 있는 저 건너편 세계 속의 주인공이 된다. 인형공장, 풀빵기계, 시계방에서의 일상을 잊는다. 무지개가 주는 환상은 얼마나 환상적인가! 그러나 모든 환상적인 것이 그렇듯 오늘 저녁의 무지개도 잠시 머물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무지개를 찾아 언덕을 올라온 사람만 쓸쓸하게 남는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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