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주권 로토’

2011-08-0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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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에 사는 50대 여성 P씨는 2주 전 한국의 남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영주권 로토에 당첨되어서 미국에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흥분에 들뜬 목소리로 전하는 ‘기쁜 소식’의 내용인즉 미 이민국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귀하가 미 영주권 로토에 당첨되었다. 수속비용 980달러를 보내면 귀하는 영주권을 얻고 미국에 와서 살 수 있다. 교육, 보험, 취업의 기회가 보장된다”는 것.

당장이라도 미국으로 달려올 듯 기뻐하는 동생의 전화를 받은 후 P씨는 두 가지 점에서 의아했다고 한다. “영주권 당첨이라니? 그런 게 있었나?” 하는 의문, 그리고 “동생이 그렇게 미국에 이민 오고 싶었나? 그런 줄 알았다면 내가 가족이민 신청이라도 해줄 걸” 하는 자책감 비슷한 것이었다.


그의 남동생이 나이 50에 뒤늦게 미국 영주권을 생각하게 된 것은 아들의 교육비 때문이었다. 아들이 조기 유학으로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학비 부담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었다. “이제 영주권이 있으니 아들이 대학에서 주 거주민 학비를 낼 수 있겠구나” 하는 게 사실상 그의 기쁨의 핵심이었다.

한국이 잘 살게 되면서 미국에 이민 오려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린카드의 인기는 여전하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이산가족이 된 기러기 가정들, 한국에서 취업이 막막해 방문비자로 무작정 미국에 건너온 청년들, 영주권이 걸려있어서 직장 내 웬만한 부당 대우는 꾹꾹 참아야 하는 취업이민 신청자들 등 ‘영주권’ 하나면 삶의 질이 바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영주권 로토’의 길이 있다면 이들은 물론 수십만 한인 불법 체류자들이 이제껏 가만있었을 리가 없다.

P씨 동생의 흥분은 며칠 지나지 않아 물거품처럼 꺼져 버렸다. “그건 사기!”라는 설명을 여러 군데서 듣게 되었다. 수수료 980달러를 보내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로토 당첨’의 행운을 없던 일로 털어내는 뒤끝은 씁쓸했다.

‘영주권 로토’는 고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강력한 지지로 1995년부터 시행된 특이한 이민제도이다. 공식 명칭이 ‘다양성 비자 추첨(Diversity Visa Lottery)’으로 보다 다양한 국가 출신의 다양한 민족을 미국 내로 받아들이기 위한 취지인 만큼 조건이 있다. 미국으로 이민을 많이 오는 나라, 즉 지난 5년간 미국 이민자가 5만 명 이상인 나라는 해당되지 않는다. 멕시코, 한국, 브라질, 필리핀, 인도, 캐나다, 영국 등의 국민들은 신청 자격이 없다.

전 세계 신청자 중 매년 5만 명을 추첨하는 영주권 로토의 수혜자는 주로 아프리카와 유럽 출신들. 아울러 매년 같은 나라 출신이 전체 비자의 7%(3,500개) 이상을 받을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영주권 로토’ 신청자는 해마다 늘어서 지난해 1,500만 명으로 기록을 세웠다. 전 세계 곳곳에서 미국 영주권을 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등장한 것이 각종 사기. 자신들이 신청을 대행하면 당첨 확률이 높다며 수수료를 요구하고, ‘당첨 되었다’며 수속비용을 요구하는 식이다.

이런 사기꾼의 덫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한국 출신과 ‘영주권 로토’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오려는 열기는 여전히 너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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