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리빨리 엄마’
2011-08-01 (월) 12:00:00
딸이 출산을 해 동부의 딸 집에 가보니 62개의 휘어진 계단을 올라 4층까지 갔다. 이 동네 건물은 옛날모습 자체를 보존하느라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한다.
그 높은 계단으로 무엇이든 들어 나르던 사위는 발을 접질려 불편해 하고 있었다.
처음 3일은 손자 안아주기 그리고 음식 만들기로 시간을 보냈다. 간혹 빨래도 도와줬는데 아래층까지 같다 오는 일이 힘들어서 꼭 벌을 서는 것만 같았다.
나흘째 되던 날 나는 딸과 사위에게 이집은 애기랑 살기에 합당치 않으니 이사를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들도 이사 가려고 본 아파트가 있지만 집 구조상 이사하기가 매우 난해하다며 생각 중이라고 했다.
이왕이면 내가 있을 때 이사하면 좋을 것 같아서 빨리빨리 준비 하자고 했다. 애들은 불가능 하다고 했다. 3일후면 내가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애들이 집 구하는 사이 난 한인 웹사이트에서 이삿짐센터를 찾은 후 자초지정을 설명해 다음날 오후에 이사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오후 4시에 시작해 밤11시까지 모든 물건을 빠르고 정확하게 정리해주고 떠나는 한인 이사서비스에 아이들은 너무도 신기해했다
나는 애들에게 대한민국이 이렇게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우리의 ‘빨리
빨리’ 문화가 한몫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나는 한인 브로커를 통해 애들이 살던 집을 하루 만에 임대시키는데도 성공했다.
아이들에게 ‘빨리빨리’가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메시지에 “빨리빨리 엄마, 빨리 다시와” 라고 쓰여 있었다.
강영혜/ 샌프란시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