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성희롱

2011-07-16 (토) 12:00:00
크게 작게
조남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얼마 전에 대학교 학과 동창모임에 갔다. 남자 선배들은 대학시절 향수에 푹 빠진 채 갖가지 주제의 대화에 몰두했다. “그래. 그때 제일 예쁜 애가 xx였지.” “아냐, 다른 아이가 더 예뻤어.” 식사할 때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문제는 2차로 노래방에 갔을 때다. 술에 취한 유부남 선배가 나와 블루스를 추겠다고 치근댔다. 싫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딱 부러지게 말했다. 징그럽다고.
여성들 중 이런 상황을 경험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보다 더 심한 성희롱을 당한 여성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드러내기를 꺼려해 공식적인 자료는 찾기 힘들지만 알게 모르게 이런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문에 보도된 사건들을 보면 성희롱은 학력, 재력과 관계없이 누구든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09년 한 신문에 의하면 풀러튼에서 바이올린 과외교습을 해온 26세 한인대학원생이 자신이 지도하던 10대 소녀를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주위에서 친구들로부터 들은 사례들도 많다. 한국의 정부부처에서 일했던 한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부서 상사가 수고했다며 자신의 엉덩이를 몇 번 치는 바람에 기겁을 했다고 한다. 너무 놀라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했다는 것이다.

사적인 모임이나 직장에서의 성희롱은 분명히 심각한 문제인데 많은 한인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피해자들을 법적으로 보호 함에도 불구하고 신고하면 해고당하거나 다른 불이익을 받을까 봐 피해자들이 신고를 안 하는 경우도 많다. 불법체류자 종업원들이 많은 한인업소에서는 신분을 빌미로 상사가 성희롱을 자행하는 경우도 많다. 피해자가 법적 대응을 못하리라는 계산이 작용하는 것이다.

LA타임스에 의하면 지난 해 한 한인식당이 연방평등고용위원회(EEOC)와 5년 전 제기된 여종업원의 성희롱 소송 합의금으로 17만 달러를 지불키로 합의했다. 그 후 정부에서는 한인상인들을 대상으로 고용차별을 금지하는 연방법 교육을 실시했다. 식당 주인은 고소를 당할까 봐 종업원들과 인사 외에는 대화하기가 불안하다며 야유회 때 같이 앉는 것도 꺼리게 된다고 LA타임스에 밝혔다.

직장상사들은 이런 식으로 투덜댄다. “그까짓 농담도 못 하냐?” “웃자고 한 소린데.” “분위기 망치기는.” 동창모임에서 같이 있던 남자와 여자 선배들은 불쾌해 하는 내 발언에 아랑곳하지 앉고 그냥 못 들은 체 하거나 오히려 부추겼다.

법적으로 문제되는 것도 심각하지만 더 나아가 남녀를 막론하고 성희롱을 사회적으로 별 것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는 게 더욱 심각한 문제다. 이런 태도는 우리들이 선진시민이 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사람들의 행동변화를 가져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회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여성들을 존중하는 걸 보편화 시켜 사회적인 관습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적인 행동이 나오기가 무섭게 상사나 동료가 눈총을 주는 것이 자연스럽게 된다. 그러면서 이런 행동은 규제되는 것이다. 윗사람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아랫사람이 쉽게 상사에게 눈총을 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만약 블루스를 추자던 그 선배의 딸이 어떤 유부남 선배에게서 그런 제안을 받았다면 어떨까? 물론 그녀의 아버지는 입에 거품을 물고 흥분할 것이다. 바로 그런 반응을 딸 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들에게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중 잣대가 발붙여서는 안 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