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유고슬라비아의 분열 이후 형성된 6개의 국가 중 하나인 크로아티아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처음 출전하여 3위에 입상해 우리에게 축구강국이라는 강한 인상을 주었다.
현재 서유럽 사람들은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 해변을 유럽 최고의 여름 휴양지로 꼽고 있다. 이곳을 여행하다보면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구별되는 크로아티아만의 독특하고 이국적인 자연환경에 금방 매료된다.
크로아티아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6개의 세계 문화유산이 있고 그중 ‘아드리해의 진주’로 불리는 고대도시 두브로브니크와 플리트비쩨 호수국립공원이 유명하다.
크로아티아 문화를 접하다 보면 그 문화 중 일부가 우리 일상생활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영화 ‘101마리의 달마시안’에 나오는 점박이개의 고향이 크로아티아의 달마치아 지방이고, 넥타이의 실질적인 역사도 크로아티아에서 시작된다.
원래 넥타이의 유래는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에 있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승전 기념비인 ‘트라야누스 원주’을 보면 로마병사들의 야영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들이 목에 두르고 있는 일종의 스카프인 ‘포칼’이 넥타이의 기원이다. 고대 로마병사들은 이 스카프를 가지고 혹독한 추위로부터 목을 보호한 동시에 무더운 여름철에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스카프에다 찬물을 적셔 목에 감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패션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에 이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스카프가 목을 감는 패션으로 다시 부활한 것은 17세기 프랑스 루이 13세 때이다. 1635년 크로아티아 군인들은 루이 13세에 의해 용병으로 고용되어 파리를 행진하는데, 당시 그들이 목에 두른 스카프가 파리지앵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그 후 루이 14세는 크로아티아 용병들의 통일된 모습에 매료된 나머지 왕실 신료 의상실에 명을 내려 최고급 스카프를 제작케 한 후 그것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어 ‘태양왕’ 혹은 ‘대왕’으로 불렸던 루이 14세가 스카프를 착용하자 이는 새로운 패션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이 새로운 스카프는 프랑스어로 ‘크라바트’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크로아티아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 ‘크로아뜨’에서 유래한다.
유럽 문화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시작된 크라바트의 열풍은 1660년대 중반 영국에 상륙했다. 영국의 찰스 2세가 귀족들에게 궁정 내에서의 크라바트 착용을 강요하면서 순식간에 영국의 상류계급사이에 퍼져나갔다. 이때 영국에서는 크라바트라는 말 대신 ‘목에 맨다’는 의미의 넥타이(necktie)라는 새로운 어휘가 탄생하였다.
뿐만 아니라 18세기에 들어와서는 ‘넥타이의 아버지’로 불리는 버우 브러멜이 넥타이의 길이와 무늬 그리고 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형, 발전시켰다.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넥타이인 매듭 후 길게 늘어뜨리는 포 인 핸드(four in hand: 매었을 때 길이가 주먹의 4배) 넥타이가 등장한 것은 1860년대이다.
한때 상류계급을 상징하던 넥타이의 위상이 요즘 들어 말이 아니다. 2008년 자료에 의하면 1980년대 120개에 달했던 미국의 넥타이 제조업체 수가 25개로 줄어들었고 또 매일 넥타이를 착용하는 미국 남성도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구온난화와 고유가로 인한 에너지 절약운동 차원에서 한국에서도 ‘쿨비즈 룩(Cool-Biz Look)’이 유행하면서 삼성을 비롯한 많은 대기업들이 노타이를 선언하였다. 행정안전부도 2009년에 ‘공무원 복장 관련 지침’을 마련하여 자유롭고 편안한 차림으로 근무하는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물론 이곳 버클리 대학교 교수들도 청바지 차림에 노타이를 하고 강의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중세 때 귀족들의 자존심이었던 넥타이가 환경과 능률화라는 시대적인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는가보다.
박정오
한국외대 교수
UC버클리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