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메밀맛 평양냉면 화끈한 함흥냉면 “바로 이 맛”

2011-06-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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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장동 냉면

날이 더워져 냉면 생각이 나는 요즘, 그러나 냉면은 여름 한 철 반짝 만들어 팔고 메뉴에서 빼버릴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흔한 것 같지만 바로 이거다, 싶은 제대로 된 냉면 맛보기가 힘든 것을 모두가 알고 있듯 냉면은 그야말로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수준이 확연히 드러나는, 결코 제대로 만들기 쉬운 음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전시간 찾은 ‘오장동 함흥냉면’은 웬 사람들이 오전부터 냉면을 먹으러 왔는지 의아할 정도로 북적였다. 이미 새벽 5시에 하루 준비가 시작되는 이 식당의 주방에는 따끈한 기운이 남아 있는 메밀면과 전분면의 반죽이 냉면으로의 탄생을 기다리며 자리를 잡고 있었고, 뽀얗게 끓는 육수, 금방 만들어져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반찬들로 북적였다.

2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종길·명은 대표 부부.


원조 이복순 할머니 이어 2대째 ‘전통의 맛’
가격 7.75달러로 인하… 별미 녹두전도 인기

LA에서 냉면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87년 가든그로브에 함경남도 함흥이 고향인 이복순 할머니가 개업한 함흥면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당시에는 손님들이 파킹랏을 두 바퀴 돌아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그 오장동 냉면은 대를 이어 이복순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인 이종길·이명은 대표가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여 제대로 된 냉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명은 대표는 “냉면은 면발이 생명이면서도 육수, 면, 고명의 조합이 조금이라도 엇갈리면 맛이 없어져요. 냉면 맛이 다 거기서 거기지…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 걸 저도 아는데요, 정말 제대로 된 냉면을 안 먹어봐서 그런 것 같아요”라며 냉면 전문점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냉면 만든 세월이 24년인 것뿐만 아니라 이종길 대표는 어머니께 물려받은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연변을 찾아 여러 냉면집 고수들로부터 물냉면의 비법을 배워오고, 양념의 특허를 내는 등 노력을 끊이지 않고 있다. 매일 아침 직접 면의 반죽을 만들고, 면 역시 손수 뽑아내는 정성도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오장동 냉면은 타운에서 유일하게 메밀면의 평양냉면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겨자와 식초 양념 없이 먹어보니 질기지 않으면서도 탱탱한 메밀면의 구수함이 느껴졌다.

양지머리에 20여가지의 채소를 넣고 푹 고아낸 육수로 만든 동치미를 영하 2도에서 숙성시킨 차가운 육수가 메밀면과 완벽하게 어우러져 냉면이 이렇게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맛을 내는 음식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살얼음 동동 뜬 깔끔하고 개운한 맛이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식혀줘 스트레스도 날려줄 것만 같았다.

매콤달콤한 맛 때문에 언제라도 입맛을 당겨주는 함흥냉면은 최고급 자연산 고춧가루와 꿀을 버무려 숙성시킨 비빔장에 조물조물 버무려낸 쫄깃한 전분면과 일주일 간 식초와 배즙으로 숙성된 홍어회의 조화가 일품이다. 너무 달지도 맵지도 않은 양념이 쫄깃한 면, 회, 무 초절임과 완벽하게 어우러져 바로 이거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뜨거운 사골육수로 매운 맛을 달래며 먹는 함흥냉면은 우리 정서의 기운이 고스란히 담긴 듯 정겹고 화끈하다.

사실 냉면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기자에게 ‘오장동 냉면’은 확실히 달랐다. 냉면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하면 딱 맞는 표현이겠다. 면은 질기지 않으면서도 고유의 맛과 질감을 가지고 있었고, 육수와 양념은 제 자리와 역할을 잘 아는 듯 당당하고 유쾌하여, 오직 냉면 한 그릇에 집중하며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맛보라고 내어준 녹두전과 만두 접시도 할머니가 사랑으로 만들어 주신 것 같은 따뜻함이 느껴져 정성이 가득 들어간 음식임을 한 번에 알 수 있는 맛을 냈다.

이 대표 부부는 한인타운에서 비즈니스를 하며 우리와 함께 불경기를 체감하며 산다. 훌쩍 뛰어 오른 재료비 때문에 줄어든 이윤 걱정보다도, 손님들을 위해 7.75달러로 냉면가격을 인하했는데, 조금 덜 벌어도 괜찮다며 같이 이겨 나가는 게 먼저라고 했다.

3가와 아드모어 코너에 35대의 넓은 주차장과 함께 깔끔하고 넓은 새 장소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외식시간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기분 좋은 냉면집이다.

●오장동 냉면

주소: 4031 W. 3rd St. LA
(3가와 아드모어 코너),
전화: (213)365-0097
영업시간: 주 7일 오픈,
오전 11시~오후 10시

<가든그로브 본점>
주소: 10031 Garden Grove Bl. GG
전화: (714)530-8850


<글·사진 이은영 객원기자>


함흥 비빔냉면

녹두빈대떡

오장동 냉면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밀면의 반죽.

평양 물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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