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K팝 한류 열풍이 불고, 미국에서는 박스 오피스의 선두를 달리는 쿵푸 팬더Ⅱ, 행오버Ⅱ 같은 영화를 통해 한국계 감독과 배우가 맹활약중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부산저축은행 사태ㆍ프로축구 승부 조작ㆍ유성기업 파업 등으로 사회가 비리와 갈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1964년 밀란의 저널니스트 루이지 바르찌니는 개인으로는 훌륭한 예술가ㆍ정치인ㆍ과학자를 배출한 이탈리아가 세계 강국대열에 끼는 것은 고사하고 유럽에서도 힘없이 밀리는 이유에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이탈리아 사람들>이라는 책을 통해 자국의 치부를 파헤치며 민족성과 문화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수백 년간 내려온 내부 부패ㆍ외부 세력의 착취로 인해 이탈리아 국민들이 정치 지도자나 대기업 경영자를 믿지 못하는 것에서 바르찌니는 해답을 찾았다.
세상에 믿을 구석이 없다고 판단한 이탈리아인들이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고 그 속에 내재된 예술성과 감성을 개발하는데 주력하느라 전체적인 국력 증강에는 소홀했다는 것이다. 부정과 비리가 넘치는 사회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 오직 믿을만한 것은 예술적 아름다움이라 여기고 그것에 전력 집중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 국민들은 무능한 대통령ㆍ정치인ㆍ장군ㆍ교수ㆍ기업인에 대해서는 끙끙거리고 참지만 실력 없는 오페라 가수ㆍ지휘자ㆍ발레리나ㆍ배우ㆍ영화감독ㆍ화가 등 예술인에게는 관대하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의 불합리성ㆍ타락을 먼저 감지하고 그것을 괴로워하며 그것의 종국을 그려내어 경고하는 이들이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 즉 예술가들이다. 시대조류보다 한걸음 앞서감으로써 오해를 받기도 하는 그들은 “한 세대 뒤에 태어났으면 좋을 뻔했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아마도 이탈리아 예술인은 시대를 진맥ㆍ경고하는 소명과 특권을 저버리고 예술을 현실도피의 방편으로 삼음으로써 그들의 나라를 허수아비 강국으로 전락시킨 듯싶다.
이탈리아 선례를 보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비리와 갈등을 빚어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구토를 일으키게 하는 인물이나 기관은 알게 모르게 교육적 공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예 썩은 냄새를 뼛속 깊이까지 풍기게 함으로써 개인의 가치에만 눈을 돌리고 좀 더 그것에 몰두하게 만들려면 더 많은 비리와 갈등의 토네이도가 일어나도록 더욱 분발들 하셔야겠다. 특히 청소년들로 하여금 ‘믿을 구석 없다’는 것을 각인시켜 소위 ‘예술적 끼’에만 집중해 이를 발굴, 개발시키려면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은 열정 개발은 고사하고 잘못하면 학습된 무기력자로 전락될 위험이 있다.
사냥꾼이 독수리 한 마리를 잡아 단단한 줄에 묶어 두었다. 생포된 독수리는 다시 하늘로 치솟기 위해 수백 수천 번 날개 짓을 해봤지만 밧줄 길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땅에 곤두박질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밧줄이 닳아 저절로 끊어지고 독수리에게 도망갈 기회가 왔다. 그렇지만 독수리는 날개를 펴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해봐야 또 떨어질 텐데”를 배운 것이다.
이것은 소설에 등장한 이야기가 아니라 유펜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이 ‘학습된 무력감’ 즉 반복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되는 과정을 실험으로 보인 것이다.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전혀 아랑곳없이 돌아가고, 처해진 환경에 대해 어떤 힘도 쓰지 못할 때 심각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무력감의 끝에는 우울증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다.
대니얼 홍
교육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