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자주 여행하는 사람의 말이다. 나리타공항에서 부터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고 했다. 명색이 국제공항이다. 게다가 한국은 바로 옆에 있는 이웃이다. 그런데 한국 돈을 일본 돈으로 바꿀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은행을 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국 돈을 취급하는 곳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전자 사전이란 걸 처음 개발한 나라가 일본이다. 그렇지만 한-일 사전은 찾아 볼 수 없었다. 90년대까지 사정은 그랬다고 한다.
2000년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2002년 이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 해에 한국 드라마 ‘겨울소나타’가 일본에서 방영됐던 것이다.
한류(韓流)가 화두다. ‘겨울소나타’가 일본을 휩쓴 지 10년, 이번에는 K-pop으로 통하는 한국 팝송이 유럽을 뒤흔들었다. 한국의 K-pop 스타들의 파리 공연이 1만4,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성황리에 마무리 된 것이다.
한국 국내 언론들도 상당히 흥분한 것 같다. 유럽에서도 한류가 통할까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열띤 호응의 현장을 목격한 데서 온 흥분 같다.
한류의 씨앗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새삼 제기되는 질문이다. 한국의 경제 발전이 한류현상을 가능케 했다. 일부의 지적이다. K-pop에 앞서 한국의 기업이 있었다. 한국의 가전제품이, 반도체가, 자동차가 세계시장을 휩쓸면서 뒤따른 현상으로 본 것이다.
정치적 이유도 지적된다. 한류 현상이 일기 시작한 것은 90년대부터다. 이 90년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뿌리가 내리기 시작한 시기다. 이 민주화 정착은 창의력 제고를 불러왔다.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세계화다. 세계화와 함께 개방성, 투명성이 한국사회 표어가 됐다. 그 민주화와 세계화의 열매가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한국 브랜드의 자체기술 개발이다. 과거 공산품이나 만들어 팔던 한국이 경쟁력을 갖춘 선진 형 경제로 탈바꿈 한 것이다.
그 문화적 열매가 한류의 분출이라는 것이다. TV 드라마, 영화, K-pop 등 대중문화에서 패션, 디자인, 화장품, 그리고 식품에 이르기까지 이제 한류는 다양한 형태로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고 있다.
이 한류현상과 관련해 새삼 주목되는 게 코리안 아메리칸의 역할이다. 특히 K-pop 경우 그 역할이 두드러진다는 것. K-pop의 질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한 게 바로 미주의 한인 2세들과 유학생들이라는 지적과 함께.
미주 한인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거의 같은 시간대에 K-pop이 미국에 소개됐다. 역으로 미국의 트렌드도 한국에 소개된다. 그 신속하고도 부단한 교류를 통해 K-pop의 세계화라고 할까 그런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과 세계의 만남에서 일게 된 것이 한류현상이고 그런 면에서 미주한인의 역할은 앞으로 더 기대가 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