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계 미국 대사

2011-06-0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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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한국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이 시조는 고려 말 문신 이조년(李兆年)의 다정가(多情歌)다. 그는 5형제의 막내였다. 그의 형들의 이름은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이었다.

그의 둘째 형, 그러니까 이천년의 손자가 어찌된 연유인지 모르지만 중국으로 건너간다. 그의 이름은 이영(李英)이고, 그 4대째 후손의 이름은 이성량(李成梁)이다.


그는 척계광과 함께 명대(明代)의 가장 탁월한 무장으로 이름을 드날린다. 요
동총병관에 올라 요동을 22년간 지키면서 숱한 전공을 세웠고 그 전공으로 영원백(寧遠伯)에 봉해진다.

훗날 청(靑)을 세운 누루하치를 어릴 때 거두어 기른 사람이 바로 이성량이다. 또 그의 집안에서는 여러 명의 장군이 나와 일세를 풍미했다.

정작 한국인에게 더 잘 알려진 인물은 그러나 이성량 보다는 그의 맏아들 이여송(李如松)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 지휘관으로 조선에 출병한 게 그였기 때문이다.

이여송의 당시 직함은 계주, 요동, 보정, 산동의 제군을 통솔하는 제독이었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휘하 병력을 거느리고 조선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이 조선출병의 선발대를 맡은 인물은 그의 동생인 여백(如栢)이다. 그 밑의 동생 여매(如梅)도 함께 출병했다. 이성량의 세 아들이 나란히 조상의 나라 조선에 출병했던 것이다.

90세가 넘도록 장수한 이성량은 당시에 생존해 있었고 조선으로 출병하는 아들 삼형제에게 조상의 나라 조선강토 수복에 힘쓰라고 간곡히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여송은 그 같은 내용의 서신을 부친이 보내온 것을 밝히면서 “집안 어르신의 가르치심이 이러하시니 어찌 조선을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겠는가”고 조선 사신에게 다짐한 것으로 이조실록은 전한다.


한국계 미국인인 성 김, 한국 이름으로는 김성용씨가 주한미대사로 내정됐다.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런 그가 LA 카운티검사생활을 거쳐 외교관으로 변신해 6자 회담 특사를 지내다가 마침내 주한 미국대사로 발탁된 것이다.

한국계로서 주한미대사로 추천됐던 인물은 그가 처음은 아니다. 워싱턴주 상원의원 신호범씨도 한 때 그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었다. 어쨌든 이번 성 김씨의 발탁은 한미 외교사에 있어 하나의 사건이다.

누구보다 한국의 정서를 잘 이해할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는 상당한 기대를 거는 눈치다. 미주 한인사회의 기대도 여간 높은 게 아니다. 특히 LA 한인사회로서는 낯이 익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제 2의, 제 3의 성 김씨가 계속 배출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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