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캥거루족’과 ‘콩나물’

2011-05-28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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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공부도 할 만큼 했으면서도 부모에게서 자립을 하지 못하고 얹혀살고 있거나 그 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캥거루족’이라고도 부르고 혹자는 유사시에 부모의 보호 속으로 숨어든다고 해서 ‘자라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1970년대 말 부터 일본과 미국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는데 반드시 이런 상황에서의 정의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의 주변에는 정신적 캥거루족이나 자라 증후군을 많이 볼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부모의 과잉보호를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요즈음의 한인들에게서, 특히 젊은 부모들에게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과잉보호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1930년대에는 “자손과 재산은 많을수록 좋다”고 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3남 2녀로 5명은 낳아야죠”라는 공익광고가 나갈 정도였다. 당시 인구증가율이 2.9%였다.


그러다 증가율을 2.0%로 둔화시킨다는 방침이 국가시책으로 채택되면서부터 가족계획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때 나온 공익광고가 “아들 하나, 딸 하나면 만족합니다”였다. 이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하나만 낳아 정성껏 키웁시다”로 바뀌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젊은 부모들에게 “하나 밖에 없는 내 새끼”란 생각을 갖게 하였으며 이러한 생각은 자녀가 원하는 것은 모두 다 해주려는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들에게서 나타나는 자녀양육 태도가 바로 ‘과잉보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잉보호의 원인은 부모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이러저러한 문제를 어려워했기 때문에 내 아이도 분명 어려워 할 것이고 내가 도와주어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두 형제가 개를 기르면서 살고 있었다. 하루는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어미를 잃은 새끼 사슴 두 마리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려와서 형제가 한 마리씩 나누어 기르기로 하였다. 그런데 막상 집에서 사슴을 기르는데 개들이 이 두 사슴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때 형은 아기 사슴 한 마리를 가슴에 품고 개들을 야단치면서 막아 냈지만 동생은 사슴이 좀 힘은 들겠지만 개들과 함께 지내도록 하면서 개들이 괴롭혀도 짐짓 모른 척하면서 사슴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돌보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형제가 먼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며칠 후 돌아와 보니 형의 사슴은 개들에게 시달리다가 죽었으나 동생이 기르던 사슴은 개들과 함께 뛰어 나와서 주인을 반겼다고 한다.

콩이 콩 밭에서 햇빛을 받으면서 비바람을 견뎌내고 제 마음껏 자라면 콩을 생산하는 콩대가 되지만 사람들이 온도, 습도, 일조량 등을 조절해 주는 시루에서 곱게 자라면 콩나물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어떤 부모가 돼야 할지는 자명해 진다.


이규성
가정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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