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실직의 설움

2011-05-25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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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캄캄한 절망적인 상황에 이를 때 보통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표현을 쓴다. 나락은 밑이 없는 구멍으로 지옥을 뜻하는 불교식 용어이다. 산스크리트어의 나라카에서 왔다. 즐거움이 전혀 없고 고통과 암흑뿐인 곳이 바로 나락이다.

경제적 침체가 장기화 하면서 말 그대로 ‘나락’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직장을 잃은 지 오래되는 장기 실업자들이다. 대학이나 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직장을 못 구해 속 끓이는 청년실업도 문제이지만, 그 보다 절망감이 더 깊은 사람들은 직장 없이 1년, 2년을 지낸 중년의 실업자들이다.

고용시장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10%를 넘던 미 전국 실업률은 9%로 떨어졌고, 12%를 웃돌던 캘리포니아 실업률은 지난달 기준 11.9%로 내려왔다.


올해 4개월 동안 가주에서 1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된 덕분이지만, 상황이 빠른 시일 내에 더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주택시장이 여전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주정부는 예산 고갈로 허덕이고 있어 신규 채용의 문이 언제나 활짝 열릴지 아직은 요원하다.

일자리는 가뭄에 콩 나듯 하고 구직자들은 몰려들다 보니 취직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저마다 다급한 사정들이 있겠지만 이때 구직원서도 제대로 내보지 못하고 밀려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1년 이상 실직 중인 장기 실직자들이다.

기업들이 직원 채용 시 실직자, 특히 1년 이상 장기 실직자는 고려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킨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자격이 좀 못해도 현재 직장이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내부적으로 ‘직장 없는 사람은 해당 무’로 아예 못 박고 있는 기업들도 많이 있다.

명백한 차별이지만 아직은 이를 규제할 법 규정이 없다. 직원 채용 시 인종이나 성별, 연령, 종교, 장애여부 등이 영향을 미치면 균등고용을 보장하는 법에 위배되지만 ‘실직’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억울해도 어디에 하소연할 데가 없는 이런 사람들이 현재 부지기수이다. 장기 실직자 수가 2차 대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지난달 기준 미전국의 실직자 수는 440만명 정도인데 이들 중 40%가 1년 이상 장기 실직자들이다.

실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삶은 암흑이고 고통인데 기업들은 그만큼 더 채용을 기피하니 말 그대로 나락이다. 그중에서도 나이가 50을 넘으면 기피대상 0순위가 되는 것이 현실. 한인사회에도 그런 케이스들이 적지 않다.

50대에 감원 당한 한 남성은 결국 본의 아니게 은퇴기로 접어들고 말았다. 경력에 걸맞은 곳에 구직원서를 내면 반응이 탐탁지 않고, “체면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자” 하고 경력과 무관한 곳을 찾아가면 ‘자격이 너무 넘쳐서 …’라며 또 기피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요즘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자원봉사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아닌 30대, 40대의 전문직 자원봉사자들이 늘고 있다. 집에서 손 놓고 놀고 있느니 자원봉사라도 하면 그 연줄로 취직 기회가 열릴 수도 있고, 전문적 업무능력이 녹슬지 않아 취업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이 언제나 탄력을 받을 지, 실직의 설움은 너무도 크고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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