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추락
2011-05-19 (목) 12:00:00
제레미 아이언스와 줄리엣 비노슈가 주연으로 나오는 ‘대미지’라는 영화가 있다. 영국의 장관인 스티븐 플레밍(아이언스)은 아름다운 아내와 착한 아들을 두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장차 며느리감(비노슈)을 데려오면서 가정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난다. 플레밍은 이 여자와 사랑에 빠져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 현장을 우연히 아들이 보게 된다. 아들은 난간에서 떨어져 사망하고 아버지는 숨어 참회하며 산다는 이야기다.
한 번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놓인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을 보면서 문득 이 영화가 떠오른다. 물론 판결을 받기 전에는 무죄 추정을 받을 권리가 있고 모든 것이 음모거나 조작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건 발생 후 지금까지 진행 과정과 그의 일생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이 범행 시간 이전에 호텔을 떠났고 급히 나온 것은 딸과의 점심 약속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다 검찰이 유전자 증거를 들이대자 이제는 성관계가 있었다면 그것은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호텔을 떠난 사람이 어떻게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맺는다는 말인가. 이보다 체포 직후 공개된 그의 사진은 사건의 전말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그의 얼굴은 모함을 당해 억울하게 잡힌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2008년 부하 여직원과 관계를 맺은 것이 발각된 후에도 ‘합의에 의한 관계’를 주장했었다. 그처럼 세계적인 명성이 있고 부하 직원의 장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부하와 가진 관계를 과연 순수한 ‘합의’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는 이보다 앞선 2002년 프랑스 여기자를 성폭행하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트리스탄 바농은 책 관계로 그를 아파트 빈 방에서 만났는데 다짜고짜 옷을 벗기고 성폭행 하려 해 필사적으로 반항한 끝에 간신히 탈출했다고 진술했다. 그녀는 “평생 정치인과 문제가 있었던 여자로 남는 것이 싫어” 고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트로스-칸과 같이 사회주의자인 그녀의 어머니가 나중에 그를 만나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느냐”고 묻자 그는 “나도 모르겠다.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로스-칸은 얼마 전 프랑스의 대표적 좌파 신문인 리베라시용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망칠 수 있는 세 가지 요소로 “돈과 여자, 유대인인 것”을 들고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 그것이 뭐가 문제인가”라고 반문했다 한다. 자기한테 뭐가 문제인가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결국은 그것 때문에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다.
할리웃에 깔린 여배우 지망생을 놔두고 가정부를 건드려 가정을 깬 슈워제네거나 대학 교수 시절부터 여학생들이 줄줄 따라 다녔다는 스트로스-칸이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 과부를 덮쳐 신세를 망친 것을 보면 인간은 참 알다가도 모를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