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1-05-1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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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높이 떠 있습니다
내려갈 길도, 빠져나갈 길도
흔적없이 사라진 뒤
소문에 갇힌 섬입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한 주일 만에 나선 오후의 외출에서
꽃상자 속에 담긴 꽃들을 만났습니다
한 주일 만에 나선 오후의 외출에서
꽃상자 속에 담긴 꽃들을 만났습니다.
가혹한 슬픔을 향하여
벌거벗은 울음빛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말 못하는 벙어리 시늉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강인한(1944 - )
‘팬지꽃-光州, 1980년 5월의 꽃’ 전문

오래전, 한 주일 만에 외출을 나섰다가 팬지꽃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허공에 매달린 꽃상자 속에 피어있는 팬지꽃들은 혼란 중에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아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도가도 못하고. 살려주세요 외치고 싶어도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팬지꽃이 외출을 못하고 떨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화자의 마음에 슬픔과 절망의 시간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팬지꽃은 光州, 1980년 5월의 꽃이 됩니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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