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은의 메시지

2011-05-1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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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텍사스 재벌이었던 넬슨과 윌리엄 헌트 형제는 석유 억만장자 해럴드슨 헌트의 아들들이다.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리비아 유전을 개발하며 승승장구하던 이들은 사업보다 투기로 돈을 벌기로 결심하고 70년대 말 은 선물 시장에 뛰어든다.

선물이란 작은 계약금만 걸고 향후 수개월에서 1년 후 물건을 인도받겠다는 계약이나 실제로 물건이 오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선물 거래를 하는 사람은 실수요자가 아니라 투기 목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물을 직접 사는 대신 선물 시장을 이용하는 이유는 실제로 물건을 사 보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는데다 작은 돈으로 많은 양을 컨트롤할 수 있는 소위 레버리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계약금이 5%라면 2,000달러로 4만 달러어치를 살 수 있다.


헌트 형제가 세계 시장의 은을 싹쓸이 하면서 온스 당 11달러 하던 은값은 1980년 초 50달러까지 치솟았다. 티파니를 비롯한 은 실수요자들은 “헌트 형제 때문에 은제품을 진짜 사야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사지 못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고 정부 당국도 조사에 나서 은 계약금(마진) 비율을 대폭 올려버렸다.

갑자기 돈을 더 내라는 마진 콜을 받은 헌트 형제들은 돈을 구할 길이 없자 은을 내다 팔기 시작했고 헌트 형제가 은을 팔았다는 소문이 나면서 그들을 따라 은 투기 열풍에 휩싸였던 사람들도 덩달아 투매 행렬에 나섰다. 언제까지 오를 것 같던 은값은 폭락세로 돌변, 4일간 50%가 떨어졌다.

그 후 수년 뒤 은값은 3달러50센트까지 떨어졌고 헌트 형제는 재산의 90%를 잃고 파산을 신청했다. 아무리 재벌도 투기판에 잘못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준 사례다. 지금부터 꼭 30년 전 일이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벌을 받는다”라는 말이 있음에도 역사는 되풀이 된다. 사람들의 기억력이 짧기 때문이다. “바보는 1분마다 새로 태어난다”는 말도 있다.

20여 년 동안 바닥을 기던 은값이 지난 수년간 다시 폭등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까지 온스 당 3달러50센트이던 은값은 작년 20달러 선을 넘더니 불과 한 달 전에는 사상 최고치인 50달러에 육박했다. 다시 “어째서 금과 은값은 오를 수밖에 없는가” 하는 기사가 신문 지상을 덮었고 금은 온스 당 3,000달러, 은은 100달러를 쉽게 넘으리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던 은값이 지난 주 갑자기 폭락세로 돌변, 한 주 사이 30% 가까이 떨어졌다. 지난 1년 간의 상승이 실수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투기 자본 덕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은뿐이 아니다. 금과 구리, 광물은 물론이고 석유, 면, 곡물 등 거의 모든 원자재 가격이 비슷한 패턴이다.

지난 1년간 은값 변동을 그래프로 그려 보면 90년대 말 인터넷 주식, 2006~2007년의 주택 건설회사 주식 상승 곡선과 거의 일치한다. 기본적인 수요 공급 원리와는 무관하게 상품 시장이 투기꾼들의 놀이터로 변했음을 말해준다. 투기 열풍이 분 뒤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불과 수 년 간격으로 2번이나 경험했음에도 사람들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과대평가 된 것은 항상 더 과대평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버블은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고 터진 후의 모습은 항상 추하다. 금과 은에 투자하기 가장 적기였던 2000년대 초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금의 죽음’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2006년 여름 주택 거품이 최전성기였을 때 타임은 ‘홈, 스위트 홈’을 커버 기사로 썼다.

신문 잡지에 나온 것을 보고 따라하는 사람은 반드시 돈을 잃는다. 그것이 세상에 투자로 돈 번 사람보다는 손해 본 사람이,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많은 이유다. 정말 큰돈을 벌려면 꼭 필요함에도 절망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와 아무도 근처에 가지 않는 물건을 싸게 사 오래오래 묵묵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물건이 금과 은은 아닌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인의 경멸과 분노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우라늄이 문뜩 떠오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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