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갈 길 먼 테러와의 전쟁

2011-05-0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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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2월 15일 쿠바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 전함 메인 호가 폭발했다. 이와 함께 배에 타고 있던 미 해군 252명이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불분명했지만 쿠바를 놓고 스페인과 으르렁대고 있던 미국에서는 이는 스페인의 소행이라는 여론이 들끓었고 4월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다.

망해가던 스페인과 떠오르던 미국과의 싸움은 미국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고 그 결과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필리핀이 스페인에서 미국 손으로 넘어갔다. 이 싸움에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산 환 언덕 전투에서 승리한 시오도어 루즈벨트는 일약 전쟁 영웅으로 떠올랐고 1900년 대선에서 매킨리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됐다 다음 해 대통령이 된 매킨리가 암살 당하자 최연소 나이로 미합중국 대통령이 됐다.

스페인에서 해방된 쿠바는 형식적으로는 독립국이었지만 미국은 언제나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었고 비옥한 땅은 미국 농장주, 고급 휴양지는 미국인 부호들의 놀이터가 되는 등 사실상 미국의 속국이었다.


그러나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섬나라였던 미국의 쿠바 지배는 1959년 갑자기 끝났다. 피델 카스트로라는 무명의 게릴라 지도자가 바티스타 정권을 뒤엎고 정권을 잡은 것이다. 쿠바 혁명 성공 요인 중에는 체 게바라를 비롯한 남미 원정 게릴라들의 도움도 컸다. 쿠바는 공산 혁명 뒤 소련에 찰싹 붙어 미 심장을 겨눈 단도 역할을 했다. 거기다 핵미사일까지 들여오려 하자 미국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카스트로의 경호를 수십 년 간 맡아 온 파비안 에스칼란테에 따르면 CIA의 카스트로 암살 기도는 638차례 있었다. 이 가운데는 시가에 폭발물 장치하기, 음식에 독 타기, 스쿠바 다이빙 수영복에 독 칠하기, 전 애인을 통해 독약이 든 크림 전달하기 등 다양한 기법이 동원됐다. 카스트로는 전 애인의 범죄 행각을 발견하고 총을 주며 “직접 손으로 쏘라”고 했지만 이 여성은 차마 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몇 년 전 만들어지기도 했다. 카스트로는 “암살 모면하기 올림픽이 있다면 아마 내가 금메달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 CIA는 카스트로를 죽이는 데는 실패했지만 쿠바 혁명의 제2인자이자 아프리카에서 남미에 이르기까지 공산 혁명을 수출하는데 앞장 선 체 게바라를 사살하는 데는 성공했다. 볼리비아 산악 지대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던 그의 행적을 추적해 체포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그는 체포된 후 곧 인근 헛간에서 사살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1일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됐다고 밝혔다. 9.11 테러가 일어난 지 거의 10년 만이다. 그동안 잘 도망 다니기는 했지만 게릴라나 혁명 지도자가 암살을 피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암살을 끝까지 피하려면 매번 살아남아야 하지만 암살에 성공하는 것은 한번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오사마의 사살로 9.11 테러 직접 피해자나 미 국민들은 환호성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도 길게 남은 ‘테러와의 전쟁’ 작품 중 한 챕터의 끝에 불과하다. 아직도 미국을 ‘사탄’으로 배우며 자라고 있는 극렬 회교도들이 중동에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이스라엘의 멸망이나 미국의 중동 철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모든 전쟁은 결국 의지의 싸움이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길은 테러리스트를 제거하는 것 말고는 없다. 오사마가 죽었다고 테러 단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제2, 제3의 테러 지도자가 계속 나오겠지만 그렇다고 테러리스트 제거를 포기하는 것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항복 선언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먼 훗날 중동이 민주화돼 지금 갈 곳 없는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 갖고 더 이상 ‘회교의 이름으로 테러를 저지르다 죽으면 70명의 처녀들이 수청을 드는 천당으로 간다’는 허황된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 와 중동인들이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을 더 원할 때, 그제서야 테러와의 전쟁은 끝날 것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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