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어깨의 힘

2011-04-02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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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한국 대기업의 부설업체 대표가 이곳 중서부를 방문했다. 사장을 비롯한 8명의 간부가 미국에 지사를 두고 사업을 벌일 계획으로 장소 물색에 나선 것이다. 우리 대학 캠퍼스에 지사를 설립할 가능성을 놓고, 2주간 대학 사무실을 사용하면서 켄터키 지역에서의 사업조건을 검토하였다.

1988년 켄터키주 조지타운에 도요타 공장이 들어왔는데, 현재 그 공장은 일본의 국외 도요타 공장 중 가장 크며 주민 약 7,000명이 취업해 매일 2,000대의 차를 생산한다. 근방엔 2만 개의 관련 일자리가 있다. 이번에 방문한 한국 기업은 자동차 외에도 많은 공업부문 계열회사가 있다. 도요타보다 훨씬 큰 세계적 기업이 시찰을 나왔으니 켄터키주에선 야단이 났다.

우리 학교에선 환영식을 했는데, 관련 미국회사와 학교가 그 몇 주 전부터 한국문화에 대한 글을 관계자들에게 돌렸고, 내게 음식 메뉴, 한국식 에티켓, 회사와 사람 이름의 발음 등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되도록 그들과 동행하면서 이것저것 도와 달라고도 했다.


평소 행사에선 함께 보기 힘든 총장과 부총장, 고위 행정담당자들 30여명이 환영식에 참석했다. 발음과 한국 에티켓을 내게 확인하면서 긴장하던 그들은, 한국 기업 임원들이 입장하자 연습한 만큼 고개 숙이면서 방문자들을 정중하게 환영했다.

방문자들은 켄터키 상공단체 간부들, 법조계 인사들, 각종 비즈니스의 회장과 사장은 물론 켄터키 주지사로부터도 초대를 받았다. 켄터키 더비 경마장, 버번 위스키 공장 등 유명시설들에도 안내 받았다. 그들은, 이미 꽉 찬 스케줄 속에 새 미팅이 계속 생겨 피곤하지만, 만나는 모두의 대접이 너무 따뜻하다며 놀라고 흡족해 했다.

방문자들의 사업은, 미국에 일거리를 창출하기보다는 미국을 한국 상품 마켓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곳 미국인들은 그들을 최고로 대접하면서 만나고자 했다. 세계적 기업이니 우선 발이라도 들여놓기를 원한 듯싶다.

27년 전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미국인들은 나를 중국인, 일본인 취급을 했다. 한국이 아직 전쟁 중인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 10년 뒤 아이를 학교에 보낼 때만 해도, 학생, 학부모들이 한국을 너무 몰라서 학교, 지역 도서관, 서점에서 한국 문화 강의도 자주 했다. 10년 전만 해도, 소비자 잡지는 한국 상품을 최하품이라 소개했고 우리 대학엔 한인 교수와 학생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인들은 최첨단 산업국의 문화와 김치에 대해 말해 달라고 먼저 부탁한다. 소비자 잡지는 한국 자동차, TV, 모니터 등 한국 상품들을 최상품으로 뽑는다. 우리 대학에도 한인 교수가 5명, 한인 학생이 30명에 달한다. 한국어 클래스도 있어 미국 학생들이 한국 노래, TV 드라마, 영화를 번역하거나 한국에 영어 가르치러 간다며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다.

그런 변화 속에 애국심과 자부심을 키워왔던 나는 이번에, 한국에서 온 방문자들이 미국인들로부터 최고로 정중한 환대를 받는 것을 목격하며 감개가 무량했다. 한국인인 것이 어느 때보다 자랑스러웠다. 기업의 부와 번영이 한국의 부와 번영으로, 또 세계 속의 한국의 힘으로, 결국엔 이민자인 내 어깨의 힘으로 전환되는 것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며칠 전 헌책방에서 유명 여행가 벌톤 홀름스(Burton Holems)가 1924년 일본에 대해 쓴 ‘여행 이야기: Travel Stories’를 구했다. 다음은 한국에 관한 글 몇 페이지의 일부다.

“오랜 문명역사를 지녔다… 지금의 조선인은 단순하며 나라 정치에 미숙하다.... 몇 백년 동안 중국, 일본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국이 되었지만, 단 몇 년 만에 실패했다.... 일본 치하가 된 것은 조선을 위해 잘 된 일이다.”

엉터리 한국 역사와 함께 한국인을 아이처럼 유치하고 더럽다고 소개했다.
내 어깨의 새 힘은, 그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났던 화를 코웃음으로 전환시켜 주었다.


김보경
대학 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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