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꼰대’가 아름다운 이유

2011-02-23 (수)
크게 작게

▶ 나눔의 행복

어린 시절 위인전을 읽거나 인생을 멋지게 사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라는 다짐했고, 30을 넘어 사람들의 이면을 보게 되면서부터는 그 마음가짐이 “저런 모습은 되지는 말아야지”로 바뀌었던 같습니다. 그리고 항상 되어서는 안 될 사람 목록 최상단에는 ‘꼰대’라는 포괄적인 단어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내게 ‘꼰대’란 단순히 나이 드신 어른을 지칭하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연령 또는 지위의 차이를 바탕으로 권위적이고 비합리적 사고로 일방적 의사소통을 강조하는 고집불통의 어른’을 통칭하는 부정적인 명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딸이 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세월이 흐르다보니, 어쩌면 아이들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내가 이미 꼰대일 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어느 날 문득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초 설 무렵에 감동적인 사건이 하나 발생했습니다. 출장차 방한 중이었는데 우연히 한 TV방송이 1960, 70년대를 풍미했던 소위 ‘꼰대 가수 4명’을 초대해 ‘세시봉’이라는 타이틀로 추억 한 마당을 펼치는 것을 시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무교동의 통기타 무대 겸 음악감상실이었던 ‘세시봉’을 통해 만난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이 메인 게스트였습니다. 예전보다 배가 나오고 머리가 벗겨지고(둘은 가발을 썼음) 볼살과 눈꼬리도 처졌지만, 그들은 싱그러웠고 재담 넘쳤으며 게다가 연륜이 주는 여유로움마저 넘쳐났습니다.


그들의 노래 역시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녹슬지 않은 저마다의 가창력과 한 데 어우러지는 하모니가 저로 하여금 TV 화면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습니다. 방송시간 내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나는, 롱펠로우를 외우며 ‘젊은 베르테르’에 동화돼 설익은 고뇌를 억지로 하던 철없는 까까머리 중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라디오 전파를 타고 찾아와 새벽까지 잠을 설치게 하던 내 청춘의 소중한 영웅들이었습니다. 다만 ‘이런 느낌은 아마 내가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기 때문일 거야’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느낌이 없겠지?’ 하는 아쉬움 섞인 걱정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인터넷이 그들의 공연에 갈채를 보내는 기사로 도배돼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돌 스타에게 열광하는 신세대들에게서 더 많이 터져나오고 있음도 알았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폭로(?)한 합산 나이가 260세인, 분명히 꼰대들, 어제까지만 해도 까맣게 잊혀졌던, 어쩌면 소통 못할 ‘꼰대’들에게 젊은이들이 흥분하고 있었으며, 그 파장이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현상의 원인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날의 감동이 그들과 함께한 추억이 만들어낸 내 마음의 환상이 아니라, 활동한지 40여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은 그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열정이 끊임없는 연마를 거쳐 갈무리된 내공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펼쳐졌을 때 젊은이들은 감동받고 자신들이 원하는 자신들의 미래상까지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송이 끝난 후, 어느 젊은이가 그들에게 한 말입니다. 먼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근사한 찬사가 있을까요? 이제 ‘꼰대’의 정의를 다시 쓰려합니다.

‘좀 답답하고 고집불통일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식지 않은 열정과 변함없는 긍지를 가슴에 갈무리한, 시대를 약간 먼저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도 당당하게 그런 꼰대가 되려 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같은 시대를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후배들로부터 듣고 싶습니다.


박 준 서(월드비전 부회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