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밸런타인스 데이

2011-02-14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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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밸런타인스 데이이다. 밸런타인스 데이의 유래는 3세기 경 로마시대 젊은 남녀의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순교한 밸런타인 신부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15세기 영국의 한 시골 처녀의 용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는 듯하다.

기원을 따지다 보니, 내 개인의 밸런타인스 데이의 기원과 역사는 어떠했나 새삼 궁금해졌다.

중학교 시절 난생 처음 밸런타인스 데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은 언니가 가져온 초컬릿 때문이었다. 옆에 있으면 떡고물은 떨어진다고,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달콤 쌉싸름 한 초컬릿의 호사와 ‘밸런타인스 데이’라는 멋들어진 발음에 그냥 행복했던 게 나의 첫 밸런타인스 데이였다.


여고생 시절 이 날은 공부와 입시의 압박 속에서도 여자 친구들끼리 느끼는 연대감, 신뢰감, 친근감 등을 표현하는 또 다른 연례행사였던 것 같다. 사실 당시는 학교가 전부였고, 학교 친구들이 최고였던 시절이었다. 밸런타인스 데이에 남자친구가 무슨 소용이었겠는가.

당시 유행했던 비밀친구란 의미의 ‘마니또’가 써준 ‘넌 좋은 친구야’란 편지 한통은 남자가 내미는 혹은 남자친구에게 건넬 초컬릿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밸런타인스 데이는 그저 ‘마니또 게임’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 후 대학에 가면서 드디어 ‘금남(禁男)’의 시절을 벗어나 공식적인 연애의 시절로 접어들었지만, 대학시절에 밸런타인스 데이는 한번도 기념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생의 비판의식이라는 특권을 맘껏 실천했던 당시에는 상업주의와 사대주의에 대한 반대로 ‘초컬릿이나 팔아보고자 하는’ ‘서양의 문화’를 결코 수용할 수 없었다. 초컬릿을 주지 않아도, 받지 않아도 전혀 섭섭하지 않았고,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는 꼿꼿한 자존심이 더 좋았다.

사회에 나와 연애가 인생에서 최고의 문제이자 최고의 고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때때로 경험하면서, 밸런타인스 데이가 내 사랑을 지켜줄 수 있다는 사실을 너그러이 인정하게 되었다. 초컬릿을 예쁘게 포장해 남자친구에게 선물하던 순간과 그 때 서로 주고받는 수줍으면서도 뿌듯한 미소는 이 날을 크리스마스 다음가는 낭만적인 날로 생생히 기억하게 해주었다.

이제 결혼 7년차, 밸런타인스 데이에 꽃을 선물 받으면 꽃값은 얼마나 했을까 하는 찰나의 의문을 지그시 누를 수 있게 되었다. 대신 형식적으로나마 꽃을 사오고 초컬릿을 사오는 남편에게 나는 소리 내지 않고 묻는다. 올해도 똑같은 거야?

나만의 색다른 밸런타인스 데이가 필요한 것이다. 집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꽃보다 밖으로 불러내서 함께 보는 영화는 왜 생각을 못할까. 마침 ‘굿 허스번드’라는 영화가 한인타운에서 상영 중이다. 이번 밸런타인스 데이에는 내가 남편을 불러내 선물하고 말테다.

결혼 7년차 나의 개인적인 밸런타인스 데이 역사는 이렇게 써진다.


문선영 퍼지캘리포니아 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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