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사냐 면 웃지요”

2011-02-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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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하버대의 마이클 샌들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강의가 한인사회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인생살이 만족함은 어떤 것인가? 사실 철학적인 단에의 개념은 코에걸면 코걸이 식이 될수도 있다.

환경이 다른 각 사회의 가치척도가 다를수도 있기 때문이리라. 옛날에 윤씨라는 부자가 살았다. 그는 돈을 많이 벌기위해 늘 고심했고 그 결과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종들에게는 늘 엄격해서, 종들은 아침 일찍부터 밤 늦도록 엄청난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한 늙은 종이 있었다. 이 종 역시 대낮에는 주인의 호통을 들으면서 땀을 뻘뻘 흘려야만 했고, 밤이 되면 온몸이 기진맥진 했으며,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오면 그대로 침상에 쓰러져 곯아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에 지쳐 곯아 떨어지고 나면 늘상 똑같은 꿈을 꾸게 되는게 아닌가!

꿈속에서 이늙은 종은 모든 백성을 다스리면서 천하를 다스리는 어엿한 한나라의 임금이었다. 너무나도 호사스러운 궁전에 살며 온갖 일들을 자기 마음대로 할수있는 왕의 신분이니 즐거운 삶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 잠에서 깨어나서는 여전히 주인의 호통을 참아 가면서 힘든일을 해야만 했다.

이 늙은 종은 스스로 위안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백년을 살면서 밤과 낮이 각각 오십년씩인데, 내가 낮에는 비록 종이어서 온갖 힘든일을 해야 하지만, 밤에는 한나라의 임금이 되니 그 즐거움이 정말 끝이 없단 말이야. 그런데 뭘 원망하겠어!”

한편 부자 윤씨는 대낮에는 집안일에 힘쓰느라 늘 고심했고, 혹시 남들이 자기보다 이익을 많이 볼까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피로했으며 밤이 늦어서는 이걱정을 그대로 안은채 잠자리에 들곤했다.

그러다보니 윤씨 역시 매일밤마다 똑같은 꿈을 꾸게되었다. 꿈에서 그는 어느 집안의 노비였다. 이 노비는 늘 주인에게 일을 못한다고 호통을 들었어야 했으며, 심한 야단은 물론 때로는 회초리로 온몸을 구타 당하기까지 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결국 그는 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끝내 병이 들어 버렸다.


만족할줄 아는것은 하나의 행복이다.

인생은 겨우 수십번의 여름가 겨울의 반복에 불과하지 않는가! 중국 철학자 노자는 “만족할줄 아는자가 부자”라고 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둘레가 얼마나 되는지 조차 모두 자신의 마음을 기준으로 삼는다.

문화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저 아프리카나 아마존 오지의 원주민들이 느끼는 만족과 행복은 무얼까?

불경기의 끝자락에서 새로 시작하는 금년엔 행복함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볼까 생각해 본다.

몸이 건강하고, 작지만 몸을 누일집과 힘들지만 매일 일하러 가는 직장이 있고, 주말에 햇볕 아래에서 노닐며 오후 반나절의 여유를 즐길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고 행복이 아닐까 싶다.

남가주의 유난히 추었던 겨울도 가고 있다. 그리고, 봄, 봄이 오고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쟁이로 파고
호미로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길리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면
웃지요”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전문이다.
나도 웃고 싶다
무욕의 저 햇볕같이 환하게, 그렇게.


(714)713-2494

마이클 방
비 부동산 동부 오피스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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