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 부부가 직접 꾸민 객실의 모습.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모티브로 소품을 직접 제작한다. [빕이디밥이디부 제공]
뾰족한 선이 교차하는 외관과 달리 내부엔 둥근 창문 프레임을 적용해 온화한 분위기를 만든다. [요앞 건축사사무소 제공]
'빕이디 밥이디 부(Bibbidi Bobbidi boo)!'
생각만 하면 생각한 대로 다 이뤄진다는, 동화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주문이다. 착한 요정이 신데렐라를 위해 호박을 마차로, 생쥐를 말로, 누더기 옷을 드레스로 바꿀 때 외운 마법 주문 말이다. 경기 양평군 강상면에는 이 주문을 본뜬 주택 '빕이디밥이디부'(대지면적 1,033㎡, 연면적 237.63㎡)가 있다. 이 집에 살면서 공방과 스테이(소형 숙박시설)를 운영하는 이우근(39) 김선미(41) 부부는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요정이라도 된 양, 머무는 이들의 꿈과 바람이 이뤄졌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빕이디밥이디부'로 이름 지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선미씨는 양평으로 옮기기 전 서울에 있는 디자인 회사를 다녔다. “10년 넘게 회사를 위한 디자인을 하다 보니 좀 더 자유로운 작업을 하고 싶더라고요. 어느 날 남편과 맥주 한잔하면서 더 늦기 전에 도시가 아닌 곳에 가서 나만의 디자인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슬쩍 말했는데, 남편이 ‘못 할 것 없지'하는 거예요. 이왕이면 작은 공방도 만들고 스테이도 해보자 한 게 시작이에요."
미술학도를 꿈꾸던 우근씨는 서울 강남에 있는 정보기술(IT) 회사에서 일한다. “직장은 서울이지만 어떻게든 도시를 벗어나 집을 지어 살고 싶었어요. 아내의 말에 ‘이때다' 싶어 실행에 옮겼죠. 마음이 변할세라 3개월 만에 출퇴근이 가능한 양평에 땅을 구입했어요."
추진력이 남다른 남편은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설계사무소를 찾고, 20여 곳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후보군을 좁혀가다 한 곳과 계약을 하기로 했지만, 인연은 따로 있었다고. “계약 전날 밤 다른 곳이 떠올라 잠이 안 오더라고요. 모두 다들 잘하는 걸 내세우는데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던 소장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뭔지 모를 예술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고요."(이우근) 최종적으로 부부는 틀에 박히지 않는 다양한 건축작업을 해온 요앞 건축사사무소의 류인근·김도란·정상경 소장과 함께 하기로 했다.
■꿈과 환상을 담은 아우트라인
“최대한 눈에 띄게 지어주세요,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요!" 속전속결로 집짓기를 결행한 부부의 첫 번째 주문이었다. 어릴 적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며 자란 부부는 두 아이를 둔 부모가 된 후에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열광하고 세계의 디즈니 테마파크를 도장깨기 하듯 찾아다니는 ‘디즈니 마니아'다.
“우리 집은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디즈니 만화를 더 좋아해요. 디즈니 세계관을 이어갈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었죠. 가족의 일상에 재미를 더하고 잠시 머무는 분들에겐 신선한 감각을 줄 수 있었으면 했어요."(김선미)
아무리 재기발랄한 건축가라도 생업의 공간을 판타지 세계로 탈바꿈시켜 달라는 미션을 받으면 막막하지 않을까. 동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공간임을 드러내면서 법규와 공사비 제약을 감안해 여러 기능을 담아내는 일은 녹록지 않았고, 세 소장들의 고민도 길어졌다. 다다른 결론은 건축물이 땅의 맥락보다는 건물 그 자체로 완결된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것. 류 소장은 “보통은 땅의 형태와 고저 차이, 주변 주택과의 연계성을 고려하면서 디자인을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건물) 스스로 완성도가 높은 디자인이 필요했다"며 "마법으로 만든 것 같은 이미지를 구현하려면 평범한 박공 모양이나 평지붕이 아닌 독특한 지붕 실루엣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상상이 빚어낸 공간 판타지
과감한 선과 다각형을 써서 그리듯 지은 건물은 각도를 세심하게 틀어 기능과 동선을 구분했다. 흐름은 공방에서 시작한다. 그림자처럼 생긴 삼각형 문을 통해 입장하는 공방은 들어서는 즉시 다른 세계로 건너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거친 노출 콘크리트 마감, 고창(창문 위쪽에 낸 작은 창)에서 떨어지는 빛, 벽을 채운 크고 작은 삼각형 창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어지는 건축가의 설명. “이렇게까지 튀려고 하는 콘셉트는 건축계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워요. 일회성에 가까운 디자인이고, 기능적으로도 완벽하지 못할 수 있죠. 하지만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을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요. 창문 하나만 하더라도 수백 개 그리며 어울리는 형태를 찾았죠."
건물 중앙은 마당을 가진 주거 공간이다. 내부는 복층 구조인데 거실의 높은 층고와 큰 창이 개방감을 키운다. 1층에는 거실, 주방, 부부 침실을, 2층에는 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두 자녀의 방을 배치했다. 주거 공간에도 원형, 타원형 모양으로 만든 동화풍 창문이 도드라진다. 류 소장은 “건물 디자인이 독립적인 것처럼 건축 요소인 창문 역시 오브제처럼 보이길 바랐다"며 “집을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면 창문은 하나의 ‘스틸 컷'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각도를 가장 안쪽으로 튼 건물은 숙박 공간. 공방과 마찬가지로 내부를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여백을 남겨두고, 가구와 욕조 등은 콘크리트로 제작해 군데군데 형광색 페인트를 칠했다. “시각적으로, 정서적으로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을 경험하길 바랐습니다.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대화를 했고, 디자인도 계속 바꾸었죠. 보편적 기능 요소보다는 머무는 사람이 다양하게 풀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류인근)
■살며 상상하며 디자인하라!
집짓기는 끝났고, 부부의 바람대로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 건물이 완성됐다. 독특한 디자인이 화제가 되며 경기도건축문화상(2021년)도 받았다. 집을 캔버스 삼아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선보이고 싶은 아내, 전원살이의 여러 가능성을 모색해보고 싶은 남편에게 이보다 더 잘 맞는 집이 있을까. 부부는 집의 모든 공간을 쇼케이스처럼 활용한다. 진열대, 선반, 탁자를 만들어 공방을 꾸몄고 주차장과 마당의 디딤석도 손수 만들었다. 스테이 공간도 인테리어가 늘 바뀌는데, 최근엔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변신했다.
“저랑 남편은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공간을 만들어가는 데는 죽이 척척 맞아요. 제가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하면 남편이 뚝딱 만들어내는 식이죠. 집 곳곳에 우리가 만든 그림과 이야기가 더해지고 있어요. 집 자체가 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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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