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Blue Holidays

2010-12-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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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의 행복

한 해를 마감하는 계절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반가운 인사가 바로 ‘Merry Christmas’입니다. 우울한 일제 강점기를 살다가 요절한 소설가 민태원 선생은 청춘을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는 말”이라고 예찬했지만, 그 청춘조차도 크리스마스가 주는 설렘에 견줄 수 없습니다.

형형색색의 트리 장식이 밤거리를 환히 비추기 시작하고, 캐롤이 흥겨움을 더합니다. 아이들은 학수고대하던 선물을 받을 거라는 기대감에 들뜨고, 젊은이들은 소중히 가꾸어 온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고백할 절호의 기회를 엿보며 가슴 졸이기도 합니다.

소식이 뜸했던 친구들에게 카드를 보내며 “잘 있었나? 나 아직 살아있네. 그동안 소식을 못 전해 미안하네” 하면 야속했던 마음도 간밤에 쌓인 눈처럼 사라지게 해주는 마법을 지닌 계절이 바로 크리스마스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해, 모든 걸 아는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교회 다니는 애들에게 핀잔주기를 즐기는 이상한 친구와 말다툼이 벌어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전혀 먹히지 않고 점점 궁지에 몰려 씩씩거리던 차에, 퍼뜩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는 “그러면 왜 모든 사람이 크리스마스에 ‘Merry Christmas’라고 인사하냐? 그리고 너는 왜 그 인사를 쓰냐?”라는 말 한마디로 그 친구를 제압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얘기하고 보니 그때까지는 너무나 익숙한 인사라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정말 사람들이 모두 ‘Merry Christmas’ 인사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선물을 들고 착한 아이들을 방문하는 영화 속의 산타클로스건 “Merry Christmas”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궁지에서 벗어나게 해 준 그 인사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아마 그때 크리스마스가 아기 예수의 탄생이라는 소중한 의미를 지닌 날임을 처음으로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그 인사가 변하고 있음을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때부턴가 ‘Happy Holidays’를 선호합니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의 크리스마스 언급에도 ‘Happy Holidays’가 등장하는 것을 보며 씁쓸함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다종교, 다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독교적 해석으로 강요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크리스마스가 어제 오늘 갑자기 제정된 것도 아니요, 로마교회가 12월25일로 정해 지키기 시작한 354년 이래 무려 천 수백년을 그렇게 보내온 날이라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항상 ‘Merry Christmas’였지, 단순히 ‘휴일을 즐겁게 보내세요’라는 인사말로 그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시도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변화가 요즘 갑자기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크리스마스 인사의 변화는 어쩌면 변화의 작은 표출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변화의 핵심에 기독교에 대한 불신과 크리스천들에 대한 실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셔서 33년의 행보를 항상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셨던 예수의 모습이 우리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이벤트에 집중되는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Merry Christmas’의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에게 Merry Christmas가 Happy Holidays로 변하고, 아기 예수 자리를 산타클로스가 대신하는 것에 대한 깊은 뉘우침이 없는 한, 크리스마스는 앞으로 ‘Happy Holidays’는커녕 ‘Blue Holidays’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왕의 왕 아기 예수의 누추한 마구간 탄생의 의미를 재인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Merry Christmas’를 되찾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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