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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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현장에서/ 입양아와 복수국적에 얽힌 이야기

2010-12-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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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다음에 나오는 글의 내용은 내가 알고 지내던 콜로라도스프링스의 미세스 오라는 분이 덴마크로 입양간 자기 조카들의 이야기라면서 보내 온 글이다.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70년대 초, 누구나 마찬가지였지만 그 당시 그들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몹시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장인 남편은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으며 실직을 하여 일용직 근로자로 근근이 살아가느라 아들 하나 딸린 3식구마저도 끼니를 잇기 어려운 상황인데 거기다가 부인은 두 번째 아이의 임신으로 만삭이었다. 그런데 막상 분만 때가 되어 병원을 가서 아이를 출산하니 놀랍게도 태어난 아이는 세쌍둥이였다. 또 하나의 아이도 견디기 힘든 판국에 아이 4명을 한꺼번에 키우기는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그 부부는 눈물을 머금고 할 수 없이 두 아이를 홀트 아동 복지회를 통해 덴마크에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날 밤 부인은 헤어질 두 아이를 끌어안고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으로 온 밤 내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두 아이와 가슴 아픈 생이별을 하고 그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채 20여년의 세월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서 헤어진 동생의 사연을 들어 알고 있던 형은 그동안 어디서 살아가는지도 모르는 자신의 헤어진 2명의 쌍둥이 동생들의 소식을 구하기 위해 애타게 이리저리 알아보곤 하였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지 않았던가. 차라리 잊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혈육에 대한 그 질긴 그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형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입양아에 관한 프로그램을 통해 덴마크의 입양아들의 소식을 알려 주는 기관의 전화번호를 입수하게 되었다며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도움을 청했다. 그 가정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고 있던 나는 즉시 덴마크로 전화를 걸어 헤어진 쌍둥이의 사연을 소개하며 찾아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로부터 몇 주 후, 걸려온 덴마크의 한 통의 국제 전화, 전화 속의 목소리는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자신의 이름이 재선이라 하였다.

헤어지기 전 부모가 지어주었던 그 이름을 덴마크의 양부모는 바꾸지 않고 그대로 불러 주었고 그가 잊지 않도록 모국어도 학원을 보내어 가르쳤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흐느끼는 음성 ‘엄마를 찾을 수 있나요? 엄마가… 엄마가… 보고 싶어요’ 그리고 쏟아 내던 재선이의 한맺힌 울음소리, 나도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덴마크 기관의 도움으로 재선이를 만나게 된 날, 그들을 돕기 위하여 나도 한국을 나갔다. 이미 늙어 버린 재선이의 친부모, 그리고 이십 년을 애타게 동생을 찾아 헤매던 그 형, 내가 재선이의 손을 이끌며 ‘이분이 너의 엄마요, 너의 형’이라 말했을 때, 짧은 2-3초 정도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재선이의 울먹이는 한 소리 ‘엄마?’ ‘형?’ 그리고 그들은 끌어안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20여년의 기나긴 그리움의 세월과 회한의 세월이 마침내 만나던 순간이었다. 아픈 울음이었고 아름다운 용서의 울음이었다. 비록 조국에 대한 한 웅큼의 기억도 없던 신생아로 고국을 떠나간 재선이었지만 그의 혈관에는 분명히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의 가슴에는 조국의 사랑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은 어디에 살든 그들은 분명히 한국인이다. 그것은 법률과 문서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요 그들의 생생한 가슴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오늘날 이런 한 맺힌 제2, 제3의 재선이는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왜 이런 한 맺힌 자식들에게 국적을 회복해 주지 않는 것인가? 조국에서 태어난 분명한 한국인인데도 먹고 살기 힘든 지겨운 가난과 열악한 환경으로 부모와 국가가 버리고 방치했던 그들의 국적인데 성인이 되어 달라면 아무런 조건 없이 국적을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결정한 입양도 아니었고 그들이 스스로 버린 고국의 국적도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는 그들의 가슴속 깊은 상처를 미안해하며 모든 것을 원상회복을 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그러한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원칙만을 고집하며 그들이 자라고 그들의 생활터전이 있는 덴마크 국적을 버리라고 하겠는가? 복수국적은 어떠한 정책이 아니라 바로 화합의 작업이요 전 세계 한인들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한민족 한겨레로 끌어안는 작업이다.

지금도 재선이 같은 젊은이들은 유럽에서 일년에도 몇천명의 관광객을 한국으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 입양아 출신으로서 전 세계의 정계에서 스포츠계에서, 연예계에서, 학계에서 놀라운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보석 같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박광수가 쓴 ‘악마의 백과사전’ 중에서 이런 글이 있다. “유럽의 어느 가정에 10년 넘도록 아무 생각 없이 우산꽂이로 사용하던
중국 항아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 우연히 놀러왔던 학자가 보니 그 우산꽂이는 엄청난 고가의 고대 중국의 국보급 문화재였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 전 세계의 입양아들이 그렇게 방치된 보석들은 아닌가? 세계는 이제 모든 국가들이 자신의 민족을 복수 국적으로 끌어안는 글로벌시대이다. 이해득실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조국을 떠나갔던 모든 입양아들을 찾아 국적을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우리가 쏟았다면 이제는 우리가 담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반짝이는 보석되어 조국의 태극기를 전 세계에 휘날릴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복수국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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