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질 좋은 사골만 고집… 정성으로 우려내

2010-06-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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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설렁탕

반갑게 맞아주는 이정원 사장의 포스가 범상치 않다. 25년 동안 한결 같은 설렁탕을 만들어온 자부심에서 나오는 것인지 인사를 건네는 얼굴이 그렇게 환하고 유쾌할 수가 없다. 많은 식당의 취재를 다녀보면 사장의 이미지와 식당의 음식이 닮은 구석이 많다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전통설렁탕 이곳이 바로 그랬다. 이정원 사장을 통해 좋은 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자신감과 기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25년간 설렁탕을 끓이면서 매일매일 그렇게 재미있고 즐겁단다.


거슬리는 맛 없이 고소함이 일품인 진국 설렁탕.


유기농 목뼈를 고아낸 국물의 해장국.


25년 전 타운서 첫 설렁탕 전문식당 열어
초이스 사골·블랙 앵거스 양지머리 사용
잡냄새 없이 진하고 깔끔한 국물맛 ‘자랑’


5개월 전 새로 오픈 한 다운타운 점을 찾아가 설렁탕 이야기를 해달라니 “기름기가 없고 담백함이 우리 설렁탕의 특징이에요” 한다. 뭔가 특별한 대답을 기대했으나 “그런 것은 없고 초이스 사골과 블랙 앵거스 양지머리를 사용해서 조미료와 잡고기 없이 만들어서 냄새 없는 것이 특기에요.(웃음) 자랑에 익숙지 않아서…”라고 어색해하며 또 웃는다.

마침 투고 음식을 가지러 들른 단골손님이 보다 못해 거든다. “이 집은 변함없는 맛이에요. 변함없는 옛날 그대로의 맛” 이 단골손님도 어머니 음식을 가져다 드리는 길이었는데, 어머니 입맛 없으실 때 최고의 음식이란다.

하긴 설렁탕이라는 음식이 그렇다. 그저 물과 좋은 재료를 푹 고아 만들어 내기 때문에 특별한 비법이 없기도 하다. 전통설렁탕은 깨끗이 정수된 좋은 물과 좋은 뼈를 사용해 무쇠 가마솥에서 뽀얗게 끓여내는데 25년의 정성, 경험, 한결 같은 마음 등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더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25년 전의 ‘신촌 설렁탕’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음식솜씨가 남달랐던 이정원 사장은 남부러울 것 없는 주부였는데, 그의 손맛에 반한 주위 사람들의 성화로 설렁탕 집을 열게 되었다.

설렁탕 단일 메뉴로 주문없이 손님이 들어오기만 하면 곧바로 내오는 설렁탕으로 인기가 대단했다. 한식당이 지금처럼 많지 않고 음식 수준도 변변치 않던 당시 미주한인사회에서 한가지 메뉴로 승부한 첫 번째 ‘전문식당’이었다. 그 때 이후 타운에 설렁탕 집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자 5년 후 상호를 전통설렁탕으로 바꾸고 이렇게 설렁탕과 함께 25년의 세월이 흘러온 것이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다 보면 믿음과 신뢰가 쌓이면서 인정하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전통 설렁탕을 찾는 이들도 거의가 단골손님이다. 25년 된 단골손님이라니 가족만큼이나 가까울 것 같다. 부모님을 따라오던 아기들이 대학생이 되어 찾아오니 손님을 맞는 보람과 기쁨이 대단하단다. “우리집 애들은 이 집 설렁탕만 먹어요”하니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전통 설렁탕의 맛은 몸이 아플 때, 입맛이 없을 때 떠오르는 음식으로 모국의 애정을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존재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태조 때 동대문 밖 전농동 선농당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낸 뒤 왕이 친히 쟁기를 잡고 밭을 갈아 보임으로써 농사의 소중함을 만백성에게 알리고 행사 후 모여든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쇠뼈를 곤 물에 밥을 말아낸 것이 바로 이 설렁탕의 기원이다. 요즘 아이들이 느끼는 대로 함께 나눠먹고 힘나게 해주는 정겨운 우리 음식인 것이다.

각종 내장과 살코기 등을 끓여내어 기름기가 많은 곰탕과 달리 설렁탕은 뼈와 양지머리처럼 기름기 없는 살코기만을 푹 끓여서 뽀얀 국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기름기가 없고 담백하다. 전통 설렁탕의 설렁탕을 한입 떠보니 거슬리는 맛없이 국물의 고소함이 대단하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젤라틴이 굳어 완전히 묵으로 변한다는데 국물을 떠먹는 동안에도 입술이 쩍쩍 달라붙는다. 미사여구 필요 없는 정말 진하고 고소한 설렁탕이다.


11시가 지나자 전화 주문으로 바빠진다. 다운타운 점에는 배달과 맛있는 점심을 위한 단품 메뉴들이 함께 선보이고 있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타인종에게도 이 집 낙지볶음은 벌써 맛있기로 소문이 났다. 국물 양념 속에 미끌거리는 낙지가 아니라 매콤한 양념이 쫄깃한 낙지를 꼼꼼히 감싸고 붙어있고 향긋한 깻잎과 미나리가 듬뿍 들어가 밥에 얹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쓰린 속을 달래주는 해장국은 유기농 목뼈를 사용하여 뽀얗게 끓여낸 국물에 배추 우거지와 갈비, 선지가 들어갔는데 보기만 해도 속이 풀어지는 것 같다.

채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비빔밥, 골다공증에 최고인 우족탕, 얼큰한 육개장, 담백한 북어국, 양념 맛이 일품인 불고기와 돼지불고기 등 열심히 일하는 다운타운의 한인들의 점심시간 입맛과 건강을 지켜주는 음식들이 가득이다.


깻잎과 미나리가 듬뿍 들어있는 양념 맛이 일품인 낙지볶음


■전통설렁탕 지점 안내
▲LA점: 869 S. Western. #5 LA, CA (213)387-8899
▲다운타운점: 1217-6 S. Wall St. LA, CA (213)749-8899


<글·사진 이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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