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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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광박사의 지중해 크루즈 여행기(6)

2010-06-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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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신들 위안하려고 고안한 운동이 ‘올림픽’

Spianada 라는 타운의 중심부에 있는 그린에 나왔다. 엘름, 올리버 나무들이 가득하고 어브, 꽃등 잘 정돈된 공원이 있고 석류, 포도등 과수도 어디에 숨어 있다고 하며 야외 카페도 공터도 있었다.

여름철 밤에는 이곳에서 관현악단, 밴드연주, 또 독창회가 계속 이어 진다고 들었다. 1994년 EU의 정상회의가 있어서 도시 중심부의 대부분을 개량 해 지금은 희랍 섬들의 수도중 제일 우아 하다고 들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 오면 이 지방의 출토품을 모아둔 박물관이 나왔고 대충 보니 1-3천년 전의 별 정교 하지 않은 사람과 동물의 석상들, 그레이징이 잘 안 된것 같으나 조각이나 그림은 매우 정교한 주홍색갈의 희랍형 단지와 그릇들이 대부분 이였다. 이곳에서 다시 북쪽으로 올라오면 오른쪽으로 CE 6?9세기에 인공섬 위에 거대한 돌로 축수한 Byzantine과 Venetian 들의 성곽과 지금은 텅 빈 병영이 있다.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야 이 성으로 들어 갈수 있었다.

유롭에 와 처음으로 미국 시니어들도 입장료를 깍아 주는 대접을 받아 본다. 장대하나 지금은 겉만 남은 비잔틴 시대때 지은 St. George 교회와 성 중앙의 높은 산에 남아 있는 망루등을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 보았다. 단순 인력으로 이 거대한 돌성을 만든 이태리인과 희랍인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고대 병영을 나오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2중주 소리가 지하층에서 나, 들여다 보니 Ionian 대학 음악생들의 연습 이였다. 돌집 밑이 시원 하고 소리의 반사도 좋아 음악대학을 넣었으리라.


다시 Spianada 중앙 광장으로 나와 북쪽의 Liston 이라는 곳으로 갔다. 이 지역은 Kerkyra 만에 바로 접해 경치가 수려하고 건물도 불란서, 영국식으로 아름다웠다. 2차 대전중 독일 나찌의 폭격을 맞아 재건축 된 곳이라 한다. 1820 년에 영국인들이 지은 St. Michael과 St. George 궁전들은 영국의 총독이 사용 하던 곳이라 옆의 다른 건물들과 함께 나찌들의 폭격을 당했단다.
해변가를 돌면서 Byzantine 박물관도 보고 동북쪽 알바니아 땅의 해변에 무성한 삼림도 본다. 잡동산이 배들이 이리저리 무질서 하게 떠있는 것을 보니 수초도 없는 깨끗한 바다물이 아깝다.

한 삼십분을 더 걸어 배가 정박된 부두까지 왔다. 오늘은 어제 보다 더 많이 걸었고 몸도 더 피곤 하다. 70 살이 가까운 부부가 하루 12 마일 이상 걷기는 쉽지 않는가 보다. 6시경에 방에가 수영복을 입고 월풀에서 마나님과 아픈 다리를 풀었다. 배는 서서히 희랍 본토의 서남부에 붙은 Katakolon 이라는 항구를 향에 출발 했고, 온 사방에 깔려 있는 섬들 사이로 제길을 잘 찾아 가는듯 하다. 오늘은 몸도 피곤 하지 마는 파도도 있어 배가 기분 나쁘게 흔들여 예약한 정장 저녁 식사는 취소 하고, 8시에 시작 하는 저녁 쇼나 구경 하고 애들에게 두번째로 간단히 메일을 보내기로 한다.

Olympia, Greece

9월 30일은 수요일이고 80F로 올라가며 여느때 같이 습기도 없고 햋살이 강한 날이고 고대 올림픽 개최지인 Olympia를 구경 하는 날이다. 배는 동트기 전 7시에 조그맣고 조용한 Katakolon 내항에 도착 했으며 7시 반에야 배에서 내릴수 있었다. 우리 같이 쿠루스에서 파는 현지 관광 프로그램을 자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현지의 대중 교통 수단이나 여러 사람이 어울려 택시를 타는데 지금까지는 관광지가 배에서 가까워 전혀 불편하지 안했으나 오늘은 조금 다르다. 배에서 현지 관광상품을 팔려는 상술인가는 몰라도 희랍의 공공 교통 수단은 정해진 시간 보다는 탈 승객의 수에 따라 움직인다는 말을 들은 지라, 왕복 두시간이 넘게 걸리는 내륙의 올림피아를 배 떠나는 3시까지 어떻게 다녀오나? 올림피아까지 가는 버스는 별 없는 것 같고 기차가 쿠루스 들어오는 날 아침 8시 반에 와 9시에 떠난다는 것을 여행사 직원으로 부터 듣고는 얼마 안 떨어저 있는 기차역으로 갔다.

마음 조리고 기다리던 기차는10분후에 도착 했고 출발은 제시간에 했다. 역에는 한 20명의 나 같은 승객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중에는 북부 New Jersey 에서 온 네쌍의 한인 부부도 있어 반갑게 만났다. 공학자로 있다 은퇴 하신분, 골프장의 주인이신분, 의사분, 또 한국 식품회사를 경영 하시는분의 부부들로 여섯분은 동 지중해만 돌고 두분은 우리같이 동서 지중해를 다 돈단다. 기차가 돌아오는 시간도 배 떠나기 전이라니 다행스럽다. 땅은 비옥 해 보이나 평지 인데도 개간이 안된 곳이 많고 일년 농지 보다는 과수 특히 포도 농지가 많아 보이니 일하기는 싫고 과일 따먹고 와인 마시기는 좋아 하는 모양이네. 올리브 나무가 지천으로 깔려 있고 한그루에 총총이 붙어 있는 푸른 열매만 따도 한 섬은 될듯 하다. 내가 어릴때 집 뒷 뜰에 제법 큰 무화과 나무가 있었다. 다 익을 때까지 못 참고 몰래 따 반쪽으로 쪼개 아껴 먹었던 무화과 였다. 여기서는 무화과 나무가 흔한 것을 보니 잘 익은 것도 나무에 다 붙어 있을테고 몰래 따먹을 사람도 없고 야단 맞을 사람도 없겠네.

옛날에 한 3 천년전 Zeus 신과 그의 엄마 신, 여동생 신을 기리고 또 오랫동안 고통 속에 있던 Zeus의 아내 Hera 신을 위안 하기 위해 근방에 살던 Mycenae 인들이 모여 생각해 낸 것이 운동경기 였단다. 서로 기력을 다투며 경쟁을 하는 공평한 게임을 Zeus 신도 좋아 했던가 보다. BCE 7-5세기부터는 종목과 기록들이 많이 향상된 지금 같은 올림픽 게임을 했다는 것이다. 그
러나 천년후 CE 4세기경에 기독교도 이던 로마왕이 이 올림픽 게임을 이단적 행사로 단정 하고 이를 중지 시키며 세워진 신전들과 부수건물들을 파괴했다고 한다. 이 경기장은 천 삼백년 이상의 방치와 지진 홍수등으로 완전히 황폐화 됐다고 한다. 영국의 고고학자가 3메타이상 흙으로 덥힌 이 올림피아의 페허를 1770년경에 발견했고 1850년경에는 독일인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모습을 찾았단다. 지금도 발굴은 계속되고 있고 값진 출토품이 나온다고 했다. 1896년에는 프랑스인들의 올림픽 게임 제창과 주선으로 처음 근대 게임이 희랍에서 열렸다고 한다. 서부 유롭 도움 없이 희랍 혼자서 해 나가는 일이 하나도 없나? 여기서 기차로 약 3 시간 걸린다는 이 나라의 수도 Athens에서 백년뒤인 2004년에도 이를 기념하여 또 게임이 열였었다. 올림픽 성화는 성역화 된 이 올림피아에서 채화 되고 있다.

기차역에서 내려 한 십여분 내려 가면 고고학 박물관이 있고 올림피아의 성역인 Altis 안에서의 나온 출토품도 모아 전시 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BCE 5-3세기때 세운 Zeus 사원에서 나온 조각된 장식품, 고대 희랍의 남자 여자 어린애 조각의 결정품들인 Hermes of Praxiteles, Nike of Paionious, Zeus and Genymedos등을 구경 했다. 빡빡히 선 올리버, 참나무들로 경관이 시원해 보이는Altis 성역에 같은 입장권으로 들어 왔다. 아무데나 흩어저 있는 것 같은 건물터나 건물의 기둥등으로는 어디가 어딘지, 무엇 때문에 있었던 것인지는 알수가 없었다. 지도를 펴 들고 여기 저기 찾아 보고 또 돌아 다녀 보니 신의 신인 제우스와 그의 아내 헤라의 신전이 비교적 큰 규모 였고 남아 있는 초석이나 기둥이 많은 것을 보면 제일 호화롭게 지은 것 같다. 그 사이의 Pelopion 이라 부르는 제단에서는 희생양을 잡아 놓고 제사를 지냈던 곳이 였는가 본데 여기서 올림픽 봉화도 채화 한다고 들었다.

동쪽으로 가 조그만한 돌문을 지나면 꽤 넓은 경기장이 나왔고 여기서는 달리기등 트랙 & 필드 경기가 열렸는가 보다. 다시 아취문으로 들어와 저멀리 외곽에 산재한 건물터들을 둘러 본다. 다양한 지방의 특색을 살려 그 지방의 귀중품을 간수 했다는 곳들도 있었고 실내 체육관, 공중 목욕탕들도 있었다. 이 성역에는 고대 7 대 불가사이 건설물중 하나인 거대한 상아와 금으로 만든 제우스상이 있었다고 한다. 넓은 경내를 이리 저리 뒤저도 초석과 부서진 지붕돌이나 기둥 따위 밖에는 없으니 상아와 금부치는 다 도둑 맞았는가? Altis 성역의 그 큰 규모에 비해 돌기둥외 남아 있는 유적이 별 없어 유감이였다.
오후 한시에 Katakolon으로 가는 기차를 놓치면 안되어 12시 반경에 경내에서 나왔다. 기차역 근방에 있는 올리브 나무 가지를 꺾어 머리에 쓸 월계관도 만들고 열매도 한주먹 땃다. 집에 돌아가면 여기서 오일이 얼마나 나오는지 볼 참이다. 올리브 기름을 물같이 안 쓰면 안 되는 것이 지중해식 음식임을 알만도 하다. 매년 어렵게 길러 내는 참깨의 밭보다 이곳 땅들이 더 기름지나? 기차역에서 부지런히 걸어 부두에 정박한 쿠루즈에 도착 하니 2시가 넘었고 배는 갈길이 멀어서인지 오후 3시에 출발했다. <계속>
그리스 올림피아의 BCE5C에 지은 여신 헤라의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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