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르키라 섬 코르푸는 호머의 ‘오딧세이’ 배경
특히 해변쪽에 붙은 성곽의 몇개의 요쇠는 둥글게 큰 블록의 돌로 쌓고 총총이 대포 구멍을 내놓고 있어 난공불락 같이 보였다. 1.2마일인 성곽의 높고 넓직한 윗길에서 바라 보는 해안, 도시안등은 아름다웠다. 이 둥글고 반 이상이 바다에 접한 성의 바로 뒤에는 큰 Srd산이 있었고 이 산에서 가하는 공격에는 방어를 못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견고한 성을 쌓은 것이 이상하다. 실제로 얼마전 유고 내란중에는 이 산을 Serbs에게 뺏겨 성곽안 구 시가지의 파손이 엄청 났다고 들었다.
성안은 중앙로가 있고 이 길은 Pile 문에서 해변가 선착장까지 가는 대로이며 이 대들보 길에 석가래 처름 붙은 골목길 양쪽에 집들이 차곡 차곡 채워져 있다. Stari Grad 라는 구시가 외에는 공터도 없고 차도도 없어 보인다. 이태리 Venice에 기독교 전도자 St. Mark를 기리는 성당이 있는 것 처럼, 여기 Dubrovnik에는 전도자 St. Blaise를 기리는 아름다운 성당도 있었다. 돌
을 새겨 만들고 옛날 이 지방의 교구장의 궁전이며 지금은 정부의 공문서등을 보관하며 옛날에 쓰든 유품들을 모아둔 Sponza 궁전, 유롭에서 제일 오래 됬다는 유태인의 Synagogue, Dominican 수도원과 중세의 예술품을 전시한 박물관등을 구경 하고, 이 지방의 특산물등을 파는 상점들을 들락 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불란서의 루이18세가 이 지방 사람들 (Croats)을 모아 기마대를 만들었다는데, 이 기마대가 목에 두른 각색의 띠가 지금 우리가 매는 넥타이의 효시이란다. 또 유롭에서 세번째로 오래된 14세기 초에 개업한 양약국도 있었다. 수은이나 납등의 특효약을 팔지는 않았나? 필레문 안에 있는 오래된 별 특성 없는 원형의Onofrio분수대를 보고는 성을 나왔다. 성 외각의 해변가에 있는 또 다른 성 Lovrijenac 이라는 곳에 올라가 막 다녀온 Dubrovnik 성곽과 저 멀리 검푸른 바다와 명경알 같이 맑은 바로 밑의 바다물을 본다. 과연 여름에는 유롭의 큰 연극, 춤, 음악 기타 예술제가 매년 열릴만 한 곳이라 생각된다.
유롭에 오면 공짜가 전혀 없고 무었이든 각박한 것이 한국과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다. 성당 출입이외는 별것아닌 곳도 막아 놓고 입장료를 받는다. 햄버거를 사먹는데 케찹봉지도 돈 받고 팔고 손바닥만한 휴지도 한장만 주고, 공짜 화장실도 없고 여유로운 미국에서 온 사람들을 각박 하게 만든다. 특히 쿠루스를 타고온 관광객에게는 가까운 곳의 버스 요금도, 별것 아닌 상품도, 음료도 비싸게 받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산품도 많았고 다양한 넥타이 예쁜 도자기와 돌로 잘 다듬어 만든 보석들도 많이 팔고 있었지만 비싸게 매겨 놓았다는 선입견으로 값만 흘겨 보고 사지 않는 관광객이 대부분이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시 셔틀 버스를 타고 해수욕장 같은 해변 가를 돌아 오후 5시경에 배로 돌아 왔다. 오늘밤 정장 디너는 미국에서 산 중국제 넥타이를 매고 갔고 캐나다 벤쿠버에서 온 셋쌍의 우리 나이 또래들과 재미 있게 얘기 하고 먹었으며, 9시의 선상 쇼를 보고는 잤다.
Corfu, Greece
Ionian 해의 동남부에 있는 희랍은 북쪽의 발칸국들 보다 한시간 먼저가 9월 29일의 해뜨는 시간은 늦게 7시35분이고 지는 시간은 7시 26분이며 하루의 반이 낮이고 기온은 80F로 걷기에는 더운 날이다. 오늘도 햋빛이 쨍쨍하다니 모자가 있어야 되겠다. 어제 저녁 6시 반경에Dubrovnik을 출발한 배는 남쪽으로 Montenegro, Albania 국의 해안을 따라 또 이태리와 가까운 Ionian 해의 입구를 지났다. Albania남단 땅이 저만큼 보이는 좁은 해협을 통과 하고 내려와 희랍의 Kerkyra 섬의 선착장에 도착 했다. 이태리어로는 Corfu 라는데 이 이름이 널리 불린 다고 한다. 희랍의 신화에서는 으뜸신인 Zeus의 허락을 받고 갱물신인 Poseidon이 민물신 Assopos 의 딸 Korkyra를 훔처와 살면서 이름 없든 이섬을 Kerkyra라 불렀다고 한다. 약 이천칠백년전 Homer의 Odyssey, 중세때 Shakespeare의 Tempest에 나오는 배경 도시라고도 했다.
BCE 8세기부터 희랍인의 일종인 Gorinthians들이 살았는데 기독교인들로 변했고 옆에Byzantine, Ottoman, Venetian 제국들이 차례로 이곳을 침략 하여 들어 왔고, 또 일단 뺏은땅을 지키려는 방어의 전쟁이 끝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 투쟁의 유산이 Corfu 의 구 시가에 남아 있는 두개의 큰 방어 성들이라고 했다.
배는 외항에 오전8시에 도착 했고 배 출입구에서 밀려 나와 텐딩 하는 배로 부두에 도착한 시간은 8시 40분경. 현지 관광 안내에는 Albania 방문등 여러곳을 택 할수 있었으나 이곳이 초행이라 역시 Corfu 읍을 샅샅이 뒤지기로 하고 출입국 관리소 밖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협소하고 미로들이 많고 혼잡스러운 구 시가지를 걸어 Mitropolis 라는16세기에 지은 Corfu의 동방정교의 성당 앞에 왔다. 음식점의 야외 텐트가 9세기부터 있는 이 교회의 전면을 가리고 있어서 격을 낮추고 있었다. 진한 오랜지 색갈로 단청한 외벽은 단순 했으나 내부는 바로크 (Baroque) 스타일로 화려하게 차려 놓았다. 양 벽에는 아브라함이 왕으로 부터 축복 받는 창세기의 장면과 모세가 누런 뱀을 들어 올리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었다. 15, 6세기 Venetian 시대에 지은 돌집들을 지나 어수선한 유대인 동네라는 곳에 왔다.
소음과 매연을 뿜어 대는 스쿠터는 정신 뺄듯 연방 다니나 우리를 잘 피해 갔고, 흑두건에 흑가운을 입고 흑수염을 단 한떼의 희랍정교 신부들도 바쁘게 우리를 잘 피해 갔다. 유대인이나 유대인 상점은 볼수 없었고 단지 비교적 수수하고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는 유대 회당이 유대동네의 표지로 남아 있었다. 지키는 사람을 근방에서 찾아 양해를 구하고 들어갔다. 몇 백년의 수난속에서도 자기의 얼을 지키고 자기들의 종교를 지키며 여러 분야에서 특출한 업적을 낳고 있는 이 유대민족의 힘을 회당의 모습이나 설비된 비품 또 그림등에서 느낄수 있었으며 이에 경이를 표했다. 다시 동쪽으로 걸어와 17세기 중엽에 지은 비교적 잘 조각된 건물들을 당시의 시청 근방에서 보고는 그 옆에 있는 성자들의 광장이라는 곳에 왔다. 여기는 Corfu에서 제일 중요한 세개의 교회들, Spyridon, Virgin of Strangers와 성 요한 교회가 있는 곳이다.
우뚝서 멀리서도 쉽게 보이는 뾰족한 종과 시게탑의 교회가 이섬을 수호 한다는Cyprus 출신의 성 Spyridon을 모시는 16세기에 지은 건물이고 2층으로 된 교회의 천장은 상델리아로 꽉 차 있었다. 사방에 촟불을 켜 교회 안이 밝았다. 17세기에 지은 나중의 두 희랍 정교의 교회도 버진 메리와 세례요한을 기리는 곳들이라 했다.<계속>
전도자 성 블라시우스를 기리는 아름다운 성 블라시우스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