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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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광 박사의 지중해 크루즈 여행기 (3)

2010-05-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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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유산 산재한 영원한 도시

세속적인 바티칸시로 불리기보다는 종교적인 “거룩한 사도좌” 즉 홀리 시(Holy See)로 불리는 것을 원한다고 하며, 이는 교황청을 구성하는 모든 성물과 기관을 총망라 한다. 타원형 바티칸 광장의 긴 꼬리처럼 붙은 진입로를 따라 올라와 광장에 도착하니 Holy See 의 성당 내외간을 보기 위해 나열한 행렬이 타원의 반 바퀴가 넘고 있었다.

덥지는 않았으나 땡볕에서 모자도 안 쓰고 반시간이상 기다리는 것도 마나님에게는 고역일 것 같다. 빨랑빨랑 날렵하게 걸어 주는 마나님이 요새는 얼마나 고마운지, 얼굴에 일광욕을 또다시 시켜 미안 하게 느껴진다.
베드로 성당을 양옆으로 둘러싸고 있는 4열, 280개가 넘는 거대한 기둥들로 이루어진 타원의 복도형 건물, 그 지붕위의 전면의 성 베드로와 교황을 지키는 100개가 넘는 성도들의 입상, 광장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석첨탑, 타원의 양 촛점에 세운 Bernini의 분수대 등 베드로 광장은 아늑하고 장엄하며 잘 짜여진 광장이다.

로마의 이름 있는 대 성당 앞에는 기독교와 상관없는 2,000년 전에 이집트(Egypt)에서 훔쳐온 상형문자가 새겨진 석탑들이 서 있다. 어째서 성당 앞에 파라오(Pharaoh)를 기리는 뾰족한 석탑을 세웠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아마 장물이나마 몇천 년의 유물을 앞에 두면 경외의 깊이를 더 할 수 있겠다고 여겼을테지. 관광객으로 온 나에게는 성 베드로가 앉았고 새 교황이 즉위할 때마다 앉는 성좌만을 Holy See로 부르는 게 더 편하다. 대성당 안쪽의 돔 밑에는 See인 거대한 청동 의자가 교회의 역할을 4분하는 각 조각상 받침 위에 서 있다. 엄청 무겁게 보이는 비둘기의 날개, 무시무시한 해골과 모래시계로 상징한 죽음의 문,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상의 피에타(Pieta)등 생사와 관계되는 무수한 조각 등도 여러 모퉁이에 있는 각 채플 안에서 구경했다. 지하실은 베드로로부터 전대 교황까지의 육신을 담아둔 석관들로 가득 차 있었다.호텔에서 사온 샌드위치와 광장 분수대 아래에서 나오는 물로 점심을 떼우고, 가자 말자 하던 바티칸 박물관을 다시 보기로 하고, 성곽 벽을 따라 박물관 입구로 갔다. 사실 시스틴(Sistine)
채플의 벽화를 한 번 더 보는 것 외는 비싼 입장료 내고 갈 마음이 없었다. 모든 입장료와 식사는 크레딧 카드를 쓰기로 하니 비싼 유로로 현금을 쓰는 것보다 마음은 편하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먼지와 자동차, 행인들로 범벅이 된 좁은 길을 걸어 왔지마는 이번에도 입장객이 너무 많다. Sistine 채플에는 5세기에 걸쳐 유명한 화가들이 장식하고, 특히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등, 양 벽에 구약과 신약을 각각 형상화 한 벽화들이 있으나 사람들에 밀려 제대로 차분히 볼 수 없어 짜증스러웠다. 온 사방에 널려 있는 기독교 성자들이나 로마 황제들의 석상은 지금의 눈높이로는 별것 아닌 것 같다. 박물관에서 많이 시달렸고 피곤은 했으나 해도 남았고 다른 볼 것도 많이 남아 있어 오늘은 강행군을 할 참이다. 버스를 타고 강을 따라 가다 다시 베네치아 광장을 둘러 로마제국의 유산이 산재한 곳으로 왔다. 콜로세움(Colosseum)이라는 이 엄청난 유물은 이태리만 아니라 인류 유산으로 으뜸 갈 것이다. 정교하게 돌로 쌓은 원형의 콜로세움은 5만명을 수용하며 사방 팔방으로 트인 출입문으로 단시간에 채우고 비울 수 있어 요사이 어지간한 스타디움 보다 규모도 크고 효율성도 나았을 것 같
다. 독재자와 싸우지는 못하고 사자와 싸워야 했던 기독교인들의 가여운 모습과 절규가 푹 파여 있는 지하 통로에서 보이고 들려오는 듯하다.

옆에 서 있는 개선문은 BCE 2세기에 세웠다고 하며 세계 제패에 기여한 로마 제국의 승전용사를 맞았던 곳이라고 한다. 파괴 안 되고 원상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콜로세움이나 공회(Forum)의 건물보다 지진에 또 로마의 반을 파괴한 북방의 고트(Goths) 족에게도 견딜 수 있게 강하게 지어 졌는가 보다.
지금은 Forum의 그 웅장했음이 단지 기둥으로만 대변하고 있지만 로마제국의 세력과 시민사회의 찬란한 문화를 믿게 한다. 시민들의 교역의 장으로, 정치와 사회문제, 철학과 사상의 자유로운 표현과 경청의 장으로, 또 종교적 숭배의 대상에 대한 청문 등이 이루어진 곳이라 하며 그 건물의 엄청난 규모는 지반의 터를 봐도 알 수 있다.

Saturn, Julia와 Vesta 신전들, Severus 아취, 유대인 박대의 상징인 Titus 아취 등은 실제로 남아 있어 다른 것을 상상 해 보는데 도움이 되었다. 요새는 철조망을 치고 입장료를 받지만 전에는 그냥 다닐 수 있었고 그때 네로(Nero)의 거처라는 곳과 대 전차 경기장, 또 ‘진실의 입’이라는 곳까지 걸어 왔으나 이번에는 시간도 촉박하고하여 포름에서만 쉬다 나왔다.
다시 베네치아 광장으로 가 별명이 결혼 케익이라 불리는 충혼 건물에 다시 올라가 지금 다녀온 곳들을 조감 하니 영원한 도시라는 별명이 합당하게 느껴진다. 마나님이 가지고 다니던 지도를 건물 위에서 바람에 떨어뜨려 지도는 부동의 수호병 앞에 내렸고 반 시간을 더 기다려 수호병 교대시에 찾았던 일화도 있었다.아픈 다리를 끌고 어제와 같이 호텔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7시에 근처의 파스타 집에서 별 맛도 없는 스파게티를 시켜 치즈 가루를 듬뿍 쳐서 먹었다. 마나님은 먹을 만 하다니 다행이다.

다른 큰 성당들인 성 요한 (St. John Lateran), 마리아 (Santa Maria Maggiore)와 기독교인의 머미들이 있는 지하 무덤지(Catacombs) 등은 크루즈 여행 뒤 하루가 더 있는 지라 그때 보기로 했다.오늘은 9월26일 토요일이고 낮 기온은 82F까지 올라가 청명 하고 해상의 물결도 잔잔하다고 하
니 항해는 순조로우리라. 밤 한시까지 가방을 챙겨 문 앞에 두고 조식은 8시까지 마치라는 주문이다. 여행사를 통해 미국에서 모아온 Holland American (HA) Cruise Lines의 승객은 약 140명 정도 인것 같고, 대부분 65세가 넘은 부부들이다. 호텔 옆의 좁은 길을 걸어 나와 짐이 실린 버스 세 대에 나눠 타고 아침 9시에 출발 했다. 로마에서 한시간여의 거리인 크루즈 출발항 Civitavecchia로 향하기 전에 세 시간동안 로마 시내 대로를 따라 버스 관광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잘 훈련된 안내원의 기내 해설을 들으며 그제 어제 몇 번 본 고적들과 사적지를 버스 안에서 조감 할 수 있었다. 특히 강안 양쪽의 건물들과 2,000년 전에 만들어진 다리들, 유대인들의 게토에 얽힌 사연, 로마 흥망의 역사 등은 흥미롭게 느껴졌다. 포름과 콜로세움 옆의 높은 지대에 올라가 다시 이곳을 조감하며 재미있게 역사를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을 들었다. 가이드도 흥미롭게 역사를 왜곡 할 때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계속>
인류유산으로 으뜸 간다 할 수 있는 로마의 콜로세움 앞에서 모델이 되어준 아내 정효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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